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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계 속의 유령

    기계 속의 유령

    1936년, 영국 케임브리지의 가을은 축축했다. 앨런 튜링은 킹스 칼리지 기숙사에서 낡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론 안개가 깔렸고, 그의 손엔 연필이 들려 있었다. 스물넷의 앨런은 숫자와 논리에 매혹된 괴짜였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 그는 중얼거렸다. 머릿속엔 끝없는 질문이 맴돌았다.

    그는 종이에 기묘한 그림을 그렸다. 테이프와 읽는 머리—가상의 기계였다. “모든 계산을 풀 수 있는 기계야,” 그는 깨달았다. 튜링 머신(Turing Machine)이 태어났다. 그는 논문을 썼다. “On Computable Numbers.” 수학자들은 놀랐다. “이건 이론이 아니야. 미래야.”

    1939년,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앨런은 블레츨리 파크로 불려갔다. 나치의 에니그마 암호가 연합군을 괴롭혔다. 그는 허름한 오두막에서 팀을 만났다. “우린 이걸 풀어야 해.” 그의 눈은 빛났다. 팀은 반信반의했다. “불가능해요.” 하지만 앨런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봄베(Bombe)라는 기계를 설계했다. 톱니바퀴와 전선이 춤췄다.

    밤마다 그는 혼자 앉아 암호를 들여다봤다. “패턴이 있어. 찾을 거야.” 1940년, 봄베가 작동했다. 에니그마가 뱉은 메시지가 해독됐다. “U보트 좌표야!” 연합군은 숨을 돌렸다. 앨런은 웃지 않았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전쟁은 단축됐고, 수백만 목숨이 salva됐다.

    전쟁이 끝난 1945년, 앨런은 맨체스터로 갔다. “진짜 컴퓨터를 만들고 싶어.” 그는 ACE(Automatic Computing Engine)를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자금은 끊겼고, 관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튜링, 너무 앞서가요.” 그는 한숨을 쉬었다. “세상이 날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1952년, 어둠이 왔다. 동성애 혐의로 체포됐다. “내가 누굴 사랑하든 무슨 상관이야?” 그는 항변했지만, 법은 냉혹했다. 화학적 거세를 택했다. “내 머리를 지키고 싶어.” 하지만 그의 몸은 약해졌다. 친구들은 떠났고, 그는 고립됐다.

    1954년 6월 7일, 윔슬로의 집. 앨런은 부엌에서 사과를 들었다. 청산가리가 묻어 있었다. “이제 쉴 때야,” 그는 미소 지었다. 서른일곱의 삶이 끝났다. 방엔 미완성 논문이 흩어져 있었다.

    2013년, 영국 여왕이 사면을 내렸다. 세상은 뒤늦게 그를 기렸다. 2023년, 맨체스터의 거리. 앨런의 동상이 서 있었다. 한 소년이 물었다. “저 아저씨 누구야?” 엄마가 대답했다. “컴퓨터를 만든 사람이야.” 바람이 불었다. 기계 속 유령은, 조용히 세상을 바꾼 마법사였다.

  • 거짓말쟁이의 역설(Liar Paradox)

    거짓말쟁이의 역설(Liar Paradox)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 문장을 들으면 어떤가? 만약 이 말이 참이라면,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므로 결국 이 말은 거짓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 말이 거짓이라면,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므로 결국 이 말은 참이어야 한다.

    이러한 모순을 거짓말쟁이의 역설(Liar Paradox)이라고 한다.

    1. 거짓말쟁이의 역설의 기원

    거짓말쟁이의 역설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메니데스(Epimenides)의 발언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했는데, 문제는 그 자신도 크레타인이었다는 점이다. 만약 그의 말이 참이라면,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야 하므로 그의 말은 거짓이 된다. 그러나 그의 말이 거짓이라면, 크레타인 중에는 정직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므로 그의 말은 참이 된다.

    이처럼 거짓말쟁이의 역설은 한 문장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모순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논리적 문제다.

    2. 거짓말쟁이의 역설의 논리적 구조

    거짓말쟁이의 역설은 간단한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1. “이 문장은 거짓이다.”라고 가정하자.
    2. 만약 이 문장이 참이라면, 문장이 주장하는 바에 따라 거짓이어야 한다 → 모순 발생.
    3. 만약 이 문장이 거짓이라면, 문장이 주장하는 바가 틀린 것이므로 참이어야 한다 → 또다시 모순 발생.

    결국 이 문장은 참인지 거짓인지 결정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3. 거짓말쟁이의 역설이 주는 철학적 문제

    거짓말쟁이의 역설은 단순한 언어적 장난이 아니라, 논리와 철학에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1) 참과 거짓의 경계 문제

    우리는 일반적으로 모든 문장이 참(True) 또는 거짓(False)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짓말쟁이의 역설은 어떤 문장이 이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논리 체계에서 “참도 거짓도 아닌 문장”을 인정해야 할까?

    (2) 자기언급(Self-reference)의 문제

    거짓말쟁이의 역설은 스스로를 언급하는 문장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수학과 논리에서도 자기언급은 종종 역설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쿠르트 괴델(Kurt Gödel)의 불완전성 정리는 수학적 체계 내에서도 스스로를 참조하는 명제가 완전한 체계를 방해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3) 언어와 의미론(Semantics)의 문제

    문장의 의미를 평가하는 방법에 따라 거짓말쟁이의 역설을 회피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철학자들은 “이 문장은 거짓이다”라는 문장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참·거짓을 따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한 해결책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있다.

    4. 거짓말쟁이의 역설을 해결하려는 시도들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논리 체계가 등장했다.

    (1) 다치 논리(Multi-valued Logic)

    일반적인 논리는 참과 거짓 두 가지 값을 가진다. 하지만 다치 논리에서는 “미결정(Undefined)”이라는 제3의 값을 추가하여, 거짓말쟁이의 역설 같은 문장을 해결하려 한다.

    (2) 계층적 언어 이론(Hierarchical Language Theory)

    러셀(Bertrand Russell)과 타르스키(Alfred Tarski)는 언어를 다른 계층(Layer)으로 나누어 해결하려 했다.
    • 한 계층의 문장은 자기 자신을 참조할 수 없다고 가정하면, 거짓말쟁이의 역설은 사라진다.
    • 예를 들어, “이 문장은 거짓이다”는 문장을 더 높은 계층에서만 평가할 수 있도록 하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3) 의미론적 폐쇄 회피(Semantic Closure Avoidance)

    언어가 자기 자신을 정의할 수 없도록 하면, 이런 역설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5. 거짓말쟁이의 역설이 현대 논리와 컴퓨터 과학에 미친 영향

    거짓말쟁이의 역설은 단순한 철학적 문제가 아니라, 수학과 컴퓨터 과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1)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Gödel’s Incompleteness Theorems)

    •    괴델은 거짓말쟁이의 역설과 유사한 논리를 사용해, 어떤 형식적 논리 체계도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
    •   즉, 모든 충분히 강력한 논리 체계에는 참인지 거짓인지 결정할 수 없는 명제가 존재한다.
    

    (2) 컴퓨터 과학과 정지 문제(Halting Problem)

    •    앨런 튜링(Alan Turing)은 “어떤 프로그램이 무한 루프에 빠질지 사전에 판별할 수 없다”는 정지 문제(Halting Problem)를 증명했다.
    •   이 문제 역시 거짓말쟁이의 역설과 같은 자기언급(self-reference)과 논리적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다.
    

    6. 결론: 거짓말쟁이의 역설이 주는 교훈

    거짓말쟁이의 역설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논리를 구성하는 방식, 언어의 한계, 심지어 수학적 체계의 불완전성까지 드러내는 중요한 문제다.

    이 역설은 현대 논리학, 철학, 수학, 그리고 컴퓨터 과학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인간이 “진실”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그러니 다음번에 누군가 “나는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하면,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철학적, 논리적, 그리고 수학적으로 깊은 의미를 가진 발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