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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 속의 심장

    돌 속의 심장

    1983년, 영국 케임브리지의 가을은 서늘했다. 소피 윌슨은 어콤 컴퓨터(Acorn Computers)의 작업실에서 낡은 설계도를 펼쳤다. 창밖으론 낙엽이 떨어졌고, 그녀의 손엔 연필이 들려 있었다. “우린 더 작고 강한 걸 만들어야 해,” 그녀는 중얼거렸다. BBC 마이크로로 성공을 맛봤지만, 소피는 한계를 봤다. 인텔의 복잡한 칩은 전력을 잡아먹었다.

    스티브 퍼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소피, 새 프로젝트 시작했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RISC로 가자. 단순하고 효율적이야.” 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명령어를 줄여 속도를 내는 아이디어였다. 그들은 팀을 꾸렸다. 12명의 엔지니어, 작은 꿈. “이건 돌 속에 숨은 심장이 될 거야,” 소피는 말했다.

    작업실은 곧 전쟁터가 됐다. 소피는 ARM1 설계를 그렸다. 32비트, 최소한의 전력. “배터리로도 돌아가야 해,” 그녀는 강조했다. 1985년 4월, 첫 칩이 나왔다. 스티브가 테스트 보드를 켰다. “작동해!” 숫자가 화면에 떴다. 하지만 어콤은 흔들리고 있었다. 시장은 IBM PC에 쏠렸다. “이걸 어디에 쓰지?” 경영진은 회의적이었다.

    1987년, 위기가 왔다. 어콤은 자금을 잃었고, ARM은 표류했다. 소피는 좌절했다. “내 심장이 이렇게 끝나?” 하지만 올리베티가 손을 내밀었다. “우리가 투자할게요.” 1990년, ARM은 독립했다. Advanced RISC Machines. 애플이 눈독을 들였다. 뉴턴 PDA에 ARM을 심으려 했다. 소피는 미소 지었다. “이제 날아오를 때야.”

    1998년, ARM은 폭발했다. ARM7이 휴대폰에 들어갔다. 노키아, 모토로라—작고 강한 칩은 배터리를 아꼈다. “이건 모바일의 심장이야,” 스티브가 말했다. 썬, 인텔이 복잡한 칩으로 싸울 때, ARM은 단순함으로 이겼다. 회사는 라이선스 모델을 택했다. “우린 칩을 안 팔아. 설계를 팔지,” 경영진은 선언했다.

    2010년대, ARM은 세상을 장악했다. 아이폰, 안드로이드—스마트폰의 90%가 ARM 심장을 뛰게 했다. 소피는 케임브리지의 강가를 걸으며 생각했다. “내가 만든 게 이렇게 커질 줄이야.” 2016년, 소프트뱅크가 320억 달러에 ARM을 샀다. “태양이 우리를 삼켰어,” 스티브가 농담했다.

    2023년, 케임브리지의 가을. 소피는 강가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ARM Cortex는 자동차, 서버까지 뻗었다. “돌 속의 심장이 세상을 움직여,” 그녀는 미소 지었다. 1983년의 그 작은 씨앗은, 이제 전 세계의 맥박이 되어 뛰고 있었다.

  • 뱀의 속삭임

    뱀의 속삭임

    1989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겨울은 축축했다. 귀도 반 로섬은 CWI 연구소의 작은 사무실에서 낡은 워크스테이션을 켰다. 창밖엔 운하를 따라 안개가 흘렀고, 그의 손엔 커피잔이 들려 있었다. “프로그래밍은 더 쉬워야 해,” 그는 중얼거렸다. ABC라는 언어를 다뤘던 그는, 그 잠재력을 사랑했지만 한계에 부딪혔다. “너무 딱딱해. 더 유연한 게 필요해.”

    12월, 크리스마스 휴가였다. 연구소는 조용했고, 귀도는 심심했다. “뭐라도 만들어볼까?” 그는 키보드를 잡았다. 새로운 언어를 구상했다. 단순하고, 읽기 쉽고, 재미있는 것. 이름은 고민 끝에 떠올랐다. 파이썬(Python)—그가 좋아하던 코미디 쇼 ‘몬티 파이튼’에서 따왔다. “코드는 진지할 필요 없어. 웃음이 있어도 돼,” 그는 웃었다.

    귀도는 코드를 썼다. 들여쓰기로 구조를 잡고, 복잡한 문법을 던졌다. “C는 너무 번거로워. 난 사람이 읽기 좋은 걸 원해.” 며칠 만에 첫 버전이 나왔다. 그는 동료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새 언어를 만들었어요. 한번 봐주세요.” 반응은 미지근했다. “ABC랑 뭐가 달라?” 하지만 귀도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건 내 취미야. 내가 쓰고 싶어서 만든 거야.”

    1991년 2월, 파이썬 0.9.0이 공개됐다. 뉴스그룹에 올리자, 소문이 퍼졌다. “이거 간단하네!” “코드를 읽는 게 즐거워!” 개발자들이 모여들었다. 귀도는 놀랐다. “내가 만든 뱀이 이렇게 커질 줄이야.” 그는 오픈소스로 풀었다. “누구나 고쳐도 돼. 같이 키우자.”

    시간이 흘렀다. 1994년, 파이썬 1.0이 나왔다. 람다, 모듈—기능이 쌓였다. 암스테르담의 운하 옆 카페에서 귀도는 맥주를 마시며 미소 지었다. “이건 단순한 도구가 아니야. 사람을 해방시키는 거야.” 하지만 갈등도 있었다. “너무 느려!”라는 비판이 나왔다. 귀도는 어깨를 으쓱했다. “속도보다 명확함이 중요해.”

    2000년, 파이썬 2.0이 나왔다. 리스트 컴프리헨션, 가비지 컬렉션—뱀은 더 강해졌다. 구글이, 유튜브가 파이썬을 품었다. 귀도는 미국으로 옮겼다. 2005년, 구글에 합류하며 그는 말했다. “내 뱀이 세상을 돕고 있어.” 2008년, 파이썬 3.0은 과거를 끊었다. “미래로 가야 해,” 그는 단호했다.

    2018년, 귀도는 리더 자리를 내려놓았다. “난 왕이 아니야. 이건 이제 모두의 거야.” 2023년, 암스테르담을 다시 찾은 그는 운하를 걸었다. 파이썬 3.11이 세상에서 뛰고 있었다. “내가 심은 씨앗이 이렇게 자랄 줄이야,” 그는 미소 지었다. 창밖 안개 속, 뱀의 속삭임은 전 세계로 퍼져 있었다.

  • 태양의 등불

    태양의 등불

    1982년, 캘리포니아 스탠퍼드의 봄은 화창했다. 빈 커프먼은 캠퍼스 근처의 허름한 창고에서 낡은 워크스테이션을 켰다. 그의 옆엔 앤디 벡톨샤임, 스콧 맥닐리, 빌 조이가 서 있었다. “우린 세상을 바꿀 거야,” 빈이 말했다. IBM의 거대한 메인프레임이 지배하던 시대, 그들은 작은 꿈을 꾸고 있었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강력한 컴퓨터.

    앤디는 책상에 스케치를 펼쳤다. “워크스테이션 하나로 연구소 전체를 돌릴 수 있어.” 그는 스탠퍼드에서 만든 SUN(Stanford University Network) 설계를 들고 왔다. “이걸로 시작합시다.” 이름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태양처럼 밝고 뜨거운 회사. 그들은 창고에서 첫 기계를 조립했다. Sun-1, 네트워크의 씨앗이었다.

    사업은 폭발했다. 1984년, Sun-2가 나왔다. 빌 조이는 유닉스를 다듬어 Solaris를 심었다. “소프트웨어가 핵심이야,” 그는 말했다. 대학, 연구소, 기업들이 썬의 기계를 샀다. 스콧은 숫자를 보며 웃었다. “우린 IBM을 흔들고 있어!” 1986년, 썬은 나스닥에 상장했다. 창고는 멘로파크의 새 사무실로 바뀌었다.

    1990년대, 썬은 날았다. SPARC 프로세서로 속도를 냈고, NFS로 네트워크를 장악했다. 어느 날, 제임스 고슬링이 찾아왔다. “스마트 기기를 위한 언어를 만들었어요.” 자바(Java)였다. 스콧은 반信반의했다. “이게 돈이 될까?” 하지만 1995년, 자바가 웹을 뒤흔들었다. “이건 태양의 불꽃이야,” 빈이 말했다.

    하지만 그림자도 드리웠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로 시장을 잡았다. “썬은 너무 비싸,”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스콧은 이를 악물었다. “우린 싸구려 안 만들어. 품질로 승부해.” 2000년대, 닷컴 붕괴가 썬을 강타했다.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태양이 지고 있어,” 직원들이 속삭였다.

    2008년,危機가 왔다. 금융위기로 매출이 떨어졌다. 스콧은 회의실에서 말했다. “우린 살아남을 거야.” 하지만 2009년, 오라클이 손을 내밀었다. “썬을 살려주죠.” 2010년, 74억 달러에 인수가 끝났다. 빈은 사무실을 떠나며 중얼거렸다. “내 태양이 꺼졌어.”

    2023년, 멘로파크의 카페. 앤디는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자바는 여전히 뛰고, Solaris는 서버에서 숨 쉬었다. “우리가 만든 등불은 꺼지지 않았어,” 그는 미소 지었다. 1982년의 그 창고에서 켜진 불빛은, 태양이 지고도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 사막 위의 작은 로봇

    사막 위의 작은 로봇

    2003년,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의 여름은 뜨거웠다. 앤디 루빈은 허름한 사무실에서 낡은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창밖으론 사막 같은 열기가 퍼졌고, 그의 머릿속엔 꿈이 소용돌이쳤다. “휴대폰은 더 똑똑해질 수 있어,” 그는 중얼거렸다. 블랙베리와 팜은 키보드에 갇혀 있었다. 앤디는 그걸 깨고 싶었다.

    그는 친구들을 끌어모았다. 리치 마이너, 닉 시어스, 크리스 화이트—작은 팀이었다. “오픈 플랫폼을 만들자. 누구나 앱을 얹을 수 있는 운영체제.” 앤디의 말에 리치는 고개를 갸웃했다. “돈은 어떻게 벌어?” 앤디는 웃었다. “먼저 세상에 뿌리고, 나중에 생각해.” 이름은 그의 별명에서 따왔다. 안드로이드(Android)—로봇을 좋아하는 앤디의 흔적이었다.

    사무실은 곧 전쟁터가 됐다. 앤디는 리눅스 커널을 뼈대로 삼아 코드를 썼다. “가볍고, 유연해야 해.” 그들은 카메라와 휴대폰을 연결하는 소프트웨어로 시작했다. 2004년, 첫 데모가 나왔다. 조잡한 화면에 녹색 로봇이 깜빡였다. “이걸로 뭘 하게?” 닉이 물었다. 앤디는 단호했다. “이건 씨앗이야. 자랄 거야.”

    돈은 문제였다. 자금이 바닥나자, 앤디는 투자자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휴대폰 OS? 시장은 이미 꽉 찼어,”라는 냉소만 돌아왔다. 2005년, 절망 속에서 구글이 손을 내밀었다. 래리 페이지와 에릭 슈밋이 말했다. “우린 모바일의 미래를 봐요. 당신의 꿈을 사죠.” 7월,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5천만 달러에 인수했다. 앤디는 안도했다. “이제 날아오를 수 있어.”

    구글의 산뷰 사무실로 옮긴 팀은 속도를 냈다. “터치스크린으로 가자,” 앤디는 제안했다. 하지만 2007년, 아이폰이 터졌다. 스티브 잡스의 유리판은 세상을 흔들었다. “우린 뒤졌어!” 크리스가 절규했다. 앤디는 이를 악물었다. “아이폰은 비싸. 우린 싸고 열린 길로 간다.” 팀은 방향을 틀었다. 멀티터치, 앱 스토어—안드로이드는 아이폰을 따라잡으려 뛰었다.

    2008년 9월, T-모바일 G1이 나왔다. 앤디는 뉴욕 발표회에서 무대에 섰다. “이건 안드로이드 1.0입니다.” 화면에 녹색 로봇이 웃었다. 관객은 미지근했다. “아이폰 짝퉁 아니야?” 하지만 개발자들은 달랐다. “이건 내가 고칠 수 있어!” 오픈소스의 힘이 발휘됐다. 삼성, HTC가 안드로이드를 품었다.

    2010년, 안드로이드 2.2 ‘프로요(Froyo)’가 세상을 뒤덮었다. 앤디는 사무실에서 맥주를 들며 팀과 웃었다. “우리가 해냈어.” 아이폰의 맞수로 떠오른 안드로이드는 스마트폰의 절반을 장악했다. 하지만 2013년, 앤디는 구글을 떠났다. “내 로봇은 이제 혼자 걸어갈 거야.”

    2023년, 팔로알토의 카페. 앤디는 창밖을 보며 안드로이드 14를 켰다. 작은 로봇은 사막 위에서 거대한 숲이 됐다. “내가 심은 씨앗이 이렇게 자랄 줄이야,” 그는 미소 지었다.

  • 열흘 밤의 코드

    열흘 밤의 코드

    1995년, 캘리포니아 마운틴 뷰의 밤은 고요했다. 브렌던 아이크는 넷스케이프(Netscape) 사무실의 작은 방에서 낡은 워크스테이션 앞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론 실리콘밸리의 불빛이 반짝였고, 그의 손엔 커피잔이 들려 있었다. 서른넷의 브렌던은 피곤했지만, 눈은 빛났다. “웹을 살아 있게 해야 해,” 그는 중얼거렸다.

    몇 달 전, 넷스케이프는 Navigator 브라우저로 인터넷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정적인 HTML로는 부족했다. “사용자가 움직이는 걸 원해,” 상사 마크 앤드리슨이 말했다. “자바 같은 걸 브라우저에 넣어.” 자바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뜨거운 언어였다. 브렌던은 고개를 저었다. “자바는 무거워. 더 가벼운 게 필요해.”

    5월, 명령이 떨어졌다. “새 언어를 만들어. 10일 안에.” 브렌던은 숨을 삼켰다. “열흘?”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책상에 앉았다. “단순하고, 유연하고, 누구나 쓸 수 있게.” 그는 Scheme의 함수형 스타일, 자바의 객체지향, Perl의 실용성을 떠올렸다. “이걸 섞자.”

    첫날 밤, 그는 이름을 고민했다. “Mocha? 너무 달콤해.” 커피잔을 보며 웃었다. 사무실은 조용했고, 키보드 소리만 울렸다. 그는 동적 타이핑을 넣었다. “변수가 자유로워야 해.” 이틀째, 프로토타입 기반 상속을 썼다. “클래스는 필요 없어.” 사흘째, 브라우저와 상호작용하는 코드를 짰다. “document.write—이걸로 웹이 춤춰!”

    넷째 날, 피로가 몰려왔다. “내가 뭘 하고 있지?”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일곱째 날, 첫 데모가 나왔다. 버튼을 누르자 경고창이 떴다. “alert(‘Hello!’).” 팀은 놀랐다. “이게 돼?” 이름은 바뀌었다. “LiveScript!” 하지만 썬과의 제휴로 다시 변했다. JavaScript. “자바의 동생 같네,” 브렌던은 씁쓸히 웃었다.

    열흘째 밤, 그는 코드를 끝냈다. 1995년 12월, Navigator 2.0에 자바스크립트가 실렸다. “세상에 나왔어,” 그는 한숨 돌렸다. 하지만 반응은 엇갈렸다. “너무 급하게 만든 거 아냐?” 개발자들은 투덜거렸다. 브렌던은 어깨를 으쓱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돼. 살아남으면 돼.”

    1996년, 자바스크립트는 퍼졌다. 웹사이트가 생동감을 얻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IE에 JScript로 맞섰지만, 브렌던의 씨앗은 뿌리내렸다. 1999년, ECMAScript 표준이 나왔다. “이제 내 손을 떠났어,” 그는 말했다.

    2019년, 마운틴 뷰의 카페. 브렌던은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자바스크립트는 웹의 심장이 됐다. Node.js, React—그의 열흘 밤이 세상을 바꿨다. “내가 만든 괴물이 이렇게 커질 줄이야,” 그는 미소 지었다. 밤하늘 별빛 아래, 1995년의 그 코드는 여전히 웹을 춤추게 하고 있었다.

  • 기계 속의 유령

    기계 속의 유령

    1936년, 영국 케임브리지의 가을은 축축했다. 앨런 튜링은 킹스 칼리지 기숙사에서 낡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론 안개가 깔렸고, 그의 손엔 연필이 들려 있었다. 스물넷의 앨런은 숫자와 논리에 매혹된 괴짜였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 그는 중얼거렸다. 머릿속엔 끝없는 질문이 맴돌았다.

    그는 종이에 기묘한 그림을 그렸다. 테이프와 읽는 머리—가상의 기계였다. “모든 계산을 풀 수 있는 기계야,” 그는 깨달았다. 튜링 머신(Turing Machine)이 태어났다. 그는 논문을 썼다. “On Computable Numbers.” 수학자들은 놀랐다. “이건 이론이 아니야. 미래야.”

    1939년,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앨런은 블레츨리 파크로 불려갔다. 나치의 에니그마 암호가 연합군을 괴롭혔다. 그는 허름한 오두막에서 팀을 만났다. “우린 이걸 풀어야 해.” 그의 눈은 빛났다. 팀은 반信반의했다. “불가능해요.” 하지만 앨런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봄베(Bombe)라는 기계를 설계했다. 톱니바퀴와 전선이 춤췄다.

    밤마다 그는 혼자 앉아 암호를 들여다봤다. “패턴이 있어. 찾을 거야.” 1940년, 봄베가 작동했다. 에니그마가 뱉은 메시지가 해독됐다. “U보트 좌표야!” 연합군은 숨을 돌렸다. 앨런은 웃지 않았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전쟁은 단축됐고, 수백만 목숨이 salva됐다.

    전쟁이 끝난 1945년, 앨런은 맨체스터로 갔다. “진짜 컴퓨터를 만들고 싶어.” 그는 ACE(Automatic Computing Engine)를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자금은 끊겼고, 관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튜링, 너무 앞서가요.” 그는 한숨을 쉬었다. “세상이 날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1952년, 어둠이 왔다. 동성애 혐의로 체포됐다. “내가 누굴 사랑하든 무슨 상관이야?” 그는 항변했지만, 법은 냉혹했다. 화학적 거세를 택했다. “내 머리를 지키고 싶어.” 하지만 그의 몸은 약해졌다. 친구들은 떠났고, 그는 고립됐다.

    1954년 6월 7일, 윔슬로의 집. 앨런은 부엌에서 사과를 들었다. 청산가리가 묻어 있었다. “이제 쉴 때야,” 그는 미소 지었다. 서른일곱의 삶이 끝났다. 방엔 미완성 논문이 흩어져 있었다.

    2013년, 영국 여왕이 사면을 내렸다. 세상은 뒤늦게 그를 기렸다. 2023년, 맨체스터의 거리. 앨런의 동상이 서 있었다. 한 소년이 물었다. “저 아저씨 누구야?” 엄마가 대답했다. “컴퓨터를 만든 사람이야.” 바람이 불었다. 기계 속 유령은, 조용히 세상을 바꾼 마법사였다.

  • 창문 너머의 빛

    창문 너머의 빛

    1983년, 레드먼드의 마이크로소프트 사무실은 조용했다. 빌 게이츠는 창가에 서서 흐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책상 위엔 잡지 한 권이 놓여 있었다. 표지엔 애플의 매킨토시가 실려 있었다. 그래픽, 아이콘, 마우스—컴퓨터가 사람처럼 느껴지는 그 인터페이스. 빌은 잡지를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우리도 할 수 있어. 아니, 더 잘할 수 있어.”

    몇 달 전, 그는 팀을 소집했다. “MS-DOS는 충분하지 않아.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고, 창을 열고, 직관적으로 쓰는 걸 원해.” 팀은 반신반의했다. MS-DOS로 돈을 벌고 있었지만, 그래픽 운영체제는 낯선 도전이었다. 프로젝트 이름은 간단했다. 윈도우(Windows). “컴퓨터가 세상을 보는 창문이 될 거야,” 빌은 선언했다.

    개발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폴 마리츠는 팀을 이끌며 밤을 새웠고, 프로그래머들은 MS-DOS 위에 그래픽 껍데기를 얹으려 애썼다. “이건 너무 느려!” 누군가 소리쳤다. 화면에 창 하나 띄우는 데 몇 초가 걸렸다. 빌은 회의실을 오가며 다그쳤다. “애플이 우리를 앞서가고 있어. 빨리 움직여!” 그의 목소리엔 조급함이 묻어났다.

    1984년 봄, 첫 데모가 준비됐다. 사무실 한구석에서 빌은 스티브 발머와 함께 화면을 봤다. 마우스를 클릭하자 창이 열렸다. 계산기, 메모장이 나타났다. “됐어!” 스티브가 외쳤다. 하지만 빌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더 부드럽게, 더 예쁘게 만들어야 해.” 팀은 한숨을 쉬었지만, 그의 비전을 따랐다.

    애플은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매킨토시가 세상에 나온 뒤, 윈도우가 비슷한 길을 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도둑’이라 불렀다. 빌은 코웃음을 쳤다. “아이디어는 누구의 것도 아니야. 중요한 건 누가 더 잘 만드느냐지.” 법적 다툼이 오갔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1985년 11월 20일, 윈도우 1.0이 출시됐다. 뉴욕의 발표회에서 빌은 무대에 섰다. “이건 개인용 컴퓨터의 미래입니다.” 화면엔 타일 모양의 창들이 떠 있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MS-DOS의 검은 화면과는 달랐다. 관객은 박수를 쳤지만, 반응은 미지근했다. “너무 느려,” “매킨토시 짝퉁 아니야?”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빌은 이를 악물었다. “다음 버전이 답을 줄 거야.”

    사무실로 돌아온 팀은 더 독해졌다. 윈도우 2.0, 3.0으로 가며 그래픽은 선명해졌고, 속도는 빨라졌다. 1990년, 윈도우 3.0이 나왔다. 이번엔 달랐다. 사무실에서, 집에서, 사람들이 창을 열고 닫으며 웃었다. “이제야 제대로 됐네,” 스티브 발머가 말했다.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세상이 우리를 볼 거야.”

    윈도우는 멈추지 않았다. 95, 98, XP로 이어지며, 그것은 단순한 소프트웨어를 넘어 일상의 일부가 됐다. 어느 날, 빌은 레드먼드의 새 사옥 창밖을 봤다. 비는 그쳤고, 햇빛이 유리창에 반사됐다. “창문이 열린 거야,” 그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1983년의 흐린 날, 그가 꿈꾼 빛은 이제 전 세계로 퍼져 있었다.

    사무실 한구석엔 윈도우 1.0이 설치된 낡은 PC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남아 있었다. 그 작은 창문은 세상을 바꾼 첫걸음이었다.

  • 유리 속의 혁명

    유리 속의 혁명

    2004년,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애플 본사는 고요했다. 스티브 잡스는 회의실에서 혼자 앉아 낡은 뉴턴 PDA를 손에 들고 있었다. “이건 실패했지만, 아이디어는 틀리지 않았어,” 그는 중얼거렸다. 그의 머릿속엔 새 꿈이 자라고 있었다. 전화기, 음악 플레이어, 인터넷—모두를 하나로 묶는 기계. 창밖엔 달빛이 비쳤고, 그는 결심했다. “이걸 만들 거야.”

    다음 날, 그는 팀을 소집했다. 토니 파델, 스콧 포스톨, 조나단 아이브—애플의 천재들이었다. “휴대폰을 재발명할 거야,” 스티브는 선언했다. 팀은 얼떨떨했다. “휴대폰? 우리가?” 토니가 물었다. 스티브는 단호했다. “블랙베리, 모토로라는 구닥다리야. 우리가 새 표준을 세울 거야.” 코드명은 퍼플(Purple).

    개발은 비밀 속에 시작됐다. 쿠퍼티노의 지하 실험실은 잠금장치로 봉쇄됐고, 팀은 밤낮없이 움직였다. 토니는 아이팟의 뿌리를 심었고, 조나단은 유리와 알루미늄으로 몸을 빚었다. “단추 하나만 놔,” 스티브는 말했다. “복잡한 건 싫어.” 하지만 문제는 터졌다. 화면은 작았고, 키보드는 불편했다. “이건 안 돼!” 스티브가 소리쳤다. 그는 책상을 쾅 치며 말했다. “전부 터치로 가자.”

    2005년, 터닝포인트가 왔다. 스콧은 멀티터치 기술을 제안했다. “손가락으로 확대하고, 스크롤하고—이게 미래야.” 조나단은 얇은 유리판을 들고 왔다. “이걸로 화면을 덮어.” 스티브는 손으로 유리를 만지며 미소 지었다. “이거야. 이 느낌이야.” 하지만 속도는 느렸다. OS X를 축소한 소프트웨어는 무거웠다. 팀은 지쳤다. “스티브, 시간 없어,” 스콧이 말했다. “그럼 더 빨리 해,” 스티브는 단칼에 잘랐다.

    2006년, 프로토타입이 나왔다. 얇은 유리판에 아이콘이 떠 있었다. 스티브는 손가락으로 스와이프하며 말했다. “이건 마법이야.” 하지만 위기가 닥쳤다. 배터리는 몇 시간 만에 닳았고, 통화 품질은 엉망이었다. “출시가 코앞인데!” 토니가 절망했다. 스티브는 이를 악물었다. “완벽하지 않으면 안 나가. 다시 해.”

    2007년 1월 9일,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센터. 스티브는 검은 터틀넥을 입고 무대에 섰다. “오늘, 애플은 세 가지를 재발명합니다. 전화기, 음악 플레이어, 인터넷.” 그는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냈다. 화면이 켜지며 아이콘이 빛났다. “이걸 아이폰이라고 합니다.” 관객은 숨을 멈췄다. 손가락이 스크롤하고, 사진이 커졌다. 환호가 터졌다. 무대 뒤, 팀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6월, 아이폰이 세상에 나왔다. 사람들은 줄을 섰고, 세상은 바뀌었다. 스티브는 사무실에서 혼자 유리창을 봤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2004년의 그 꿈은, 유리 속에서 혁명으로 피어났다.

  • 얼음 속의 불꽃

    얼음 속의 불꽃

    1996년,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애플 본사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몇 달 전 NeXT에서 돌아와, 회의실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 창밖엔 비가 내렸고, 그의 손엔 NeXTSTEP의 코드가 담긴 디스크가 들려 있었다. 애플은 무너지고 있었다. 맥 OS는 낡았고, 경쟁자들은 앞서갔다. “이건 끝이 아니야,” 스티브는 중얼거렸다. “내가 다시 시작할 거야.”

    그는 전화를 들었다. “어베이, 팀을 불러.” 어베이 티바니언, 조나단 루빈스타인—NeXT 시절의 동료들이었다. “애플을 살리려면 새 운영체제가 필요해. NeXTSTEP을 심어야 해.” 어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시간 없어, 스티브. 1년 안에 돼야 해.” 스티브는 이를 악물었다. “그럼 밤을 새우자.”

    개발은 전쟁이었다. 쿠퍼티노의 지하 사무실에서, 팀은 NeXTSTEP을 뜯었다. 유닉스 기반의 단단한 뼈대, 매끄러운 인터페이스—그들은 이를 맥에 맞게 다듬었다. “사용자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해,” 스티브는 강조했다. 어느 날, 그는 화이트보드에 물방울 모양의 창을 그렸다. “이렇게 예뻐야 해.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야.” 팀은 한숨을 쉬었지만, 그의 비전에 끌렸다.

    1997년, 애플은 NeXT를 인수했다. 스티브는 CEO 자리에 앉았고, 프로젝트는 속도를 냈다. 코드명은 랩소디(Rhapsody). 하지만 갈등이 터졌다. 개발자들은 “너무 복잡해!”라며 반발했고, 외부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기존 앱이 안 돌아가!”라고 불평했다. 스티브는 회의실에서 소리쳤다. “우리가 틀린 게 아니야. 세상이 따라올 거야!”

    1999년, 방향이 바뀌었다. “랩소디는 너무 무거워. 더 가볍고 빠르게.” 팀은 새 계획을 세웠다. 코드명 OS X. X는 로마 숫자 10, 혁신의 상징이었다. 어베이는 커널을 다듬었고, 조나단은 하드웨어와 맞췄다. 스티브는 디자인에 집착했다. “창이 반짝여야 해. 물처럼 투명해야 해!” 아쿠아(Aqua) 인터페이스가 태어났다.

    2000년, 첫 데모가 나왔다. 스티브는 무대에 서서 OS X를 켰다. 물방울 버튼, 반투명 창—관객은 숨을 멈췄다. “이건 미래야,” 그가 말했다. 하지만 속으론 불안했다. 출시는 늦어졌고, 버그가 쏟아졌다. 팀은 지쳤다. 어느 밤, 어베이가 말했다. “스티브, 우리가 너무 서둘렀나?” 스티브는 단호했다. “늦는 건 괜찮아. 완벽하지 않으면 안 돼.”

    2001년 3월 24일, OS X 10.0 ‘치타(Cheetah)’가 나왔다. 느렸지만 아름다웠다. 사용자들은 매혹됐다. “이게 맥이야?”라는 감탄이 터졌다. 스티브는 사무실에서 팀과 샴페인을 들었다. “우리가 해냈어.”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10.1, 10.2—OS X는 날렵해졌다. 2007년, 레오파드(Leopard)가 나올 땐 세상을 뒤흔들었다.

    2015년, 쿠퍼티노의 밤. 스티브는 떠났지만, OS X는 macOS로 이름을 바꿔 살아남았다. 어베이는 창밖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가 없어도 이 불꽃은 꺼지지 않아.” 1996년의 얼어붙은 순간, 스티브가 심은 씨앗은 이제 거대한 불길로 타오르고 있었다.

  • 녹색 꿈의 섬

    녹색 꿈의 섬

    1991년,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의 여름은 따뜻했다. 제임스 고슬링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사무실에서 낡은 워크스테이션 앞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론 햇빛이 쏟아졌고, 그의 손엔 연필이 들려 있었다. “미래는 연결이야,”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TV, 냉장고, 자동차—모든 기기가 서로 말을 걸며 움직이는 세상. 그 꿈을 이루려면 새 언어가 필요했다.

    몇 달 전, 그는 ‘그린 프로젝트(Green Project)’라는 비밀스러운 팀에 합류했다. 패트릭 노튼, 마이크 셰리던과 함께였다. 썬의 높은 사람들은 말했다. “스마트 기기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봐.” 제임스는 C와 C++를 좋아했지만, 한계가 보였다. “너무 복잡하고, 오류가 많아.” 그는 새 언어를 구상했다. 단순하고, 안전하고, 어디서나 돌아가는 것.

    사무실은 곧 실험실이 됐다. 제임스는 Oak라는 이름을 붙였다. 창밖 오크 나무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그는 밤을 새우며 코드를 썼다. 객체지향, 가비지 컬렉션, 플랫폼 독립성—아이디어가 하나씩 쌓였다. “컴파일 한번 하면 어디서나 돼야 해,” 그는 팀에게 말했다. 1992년, 첫 데모가 나왔다. 작은 장치에서 화면이 깜빡이며 “Hello, World”가 떴다. “됐어!” 패트릭이 외쳤다. 하지만 썬은 관심이 없었다. “이게 뭐에 쓰이는데?”

    시간이 흘렀다. 그린 프로젝트는 표류했다. 제임스는 좌절했지만, 인터넷의 물결을 봤다. “웹이 커지고 있어. 이걸로 해볼까?” 그는 Oak를 다듬었다. 1995년, 썬은 방향을 틀었다. “웹 브라우저에서 돌아가게 하자.” 이름도 바꿨다. 자바(Java)—팀이 좋아하던 커피에서 따왔다. 제임스는 웃었다. “커피처럼 강렬하고 부드럽길.”

    5월, 썬월드 컨퍼런스에서 자바가 공개됐다. 존 게이지가 무대에 서서 말했다. “이건 인터넷의 미래야!” 브라우저에서 애플릿이 춤췄다. 관객은 환호했다. 제임스는 무대 뒤에서 손을 떨었다. “내 꿈이 세상에 나왔어.” 자바는 빠르게 퍼졌다. 개발자들은 단순함에 반했고, “Write Once, Run Anywhere”라는 약속에 끌렸다.

    하지만 갈등도 있었다. 썬은 자바를 오픈소스로 풀까 고민했지만, 통제를 유지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J++로 반격하며 소송이 오갔다. 제임스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만든 건 자유로워야 했는데.” 그래도 자바는 멈추지 않았다. 엔터프라이즈, 안드로이드—세계 곳곳으로 뻗었다.

    2010년, 오라클이 썬을 인수했다. 제임스는 떠났다. “자바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야.”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2023년, 멘로파크의 카페에서 그는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열었다. 자바 21이 깔려 있었다. “여전히 잘 돌아가네,” 그는 미소 지었다.

    창밖 오크 나무가 바람에 흔들렸다. 1991년의 그 씨앗은 이제 거대한 섬이 되어, 전 세계를 연결하고 있었다. 제임스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녹색 꿈이 이렇게 커질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