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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풍 속의 씨앗

    북풍 속의 씨앗

    1994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가을은 차가웠다. 몬티 위데니우스는 아파트의 작은 방에서 낡은 PC 앞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론 북풍이 몰아쳤고, 화면엔 코드 줄이 깜빡였다. 그의 옆엔 데이비드 액스마크가 커피를 들고 서 있었다. “몬티, 이게 정말 될까?” 데이비드가 물었다. 몬티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 “되게 만들 거야.”

    몇 년 전, 몬티는 TcX라는 회사에서 데이터베이스를 다뤘다. mSQL이라는 도구를 썼지만, 속도가 느리고 제약이 많았다. “내가 원하는 건 더 빠르고 단순한 거야,” 그는 생각했다. 어느 날 밤, 그는 키보드를 잡고 새 데이터베이스를 짜기 시작했다. 목표는 명확했다. 누구나 쉽게 쓰고, 속도가 빠른 시스템. 이름을 고민하다 딸에게서 힌트를 얻었다. MySQL—첫째 딸 ‘My’의 이름을 딴 선물이었다.

    몬티는 코드를 썼다. ISAM 엔진으로 파일을 관리하고, 쿼리를 최적화했다. 데이비드는 사업 쪽을 맡았다. “이걸 무료로 주고, 지원으로 돈을 벌자.” 그들의 아이디어였다. 1995년, MySQL 3.11이 세상에 나왔다. 작고 날쌔서, 웹 개발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졌다. “이거 빠르네!” “설치도 쉬워!” 몬티는 미소 지었다. “이게 내가 원하던 거야.”

    1998년, TcX는 MySQL AB로 이름을 바꿨다. 몬티와 데이비드는 앨런 라슨을 끌어들여 팀을 키웠다. 오픈소스였지만, 듀얼 라이선스로 돈을 벌었다. 무료로 쓰고 싶으면 GPL, 상업용은 유료. 회사는 스톡홀름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자랐다. 어느 날, 몬티는 창밖을 보며 말했다. “이건 단순한 소프트웨어가 아니야. 사람들이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을 바꾸는 거야.”

    2000년대 초, MySQL은 폭발했다. 인터넷 붐과 함께 웹사이트들이 데이터를 쌓았고, MySQL은 그 중심에 섰다. 페이스북, 유튜브—거대 기업들이 채택했다. 하지만 몬티는 걱정했다. “너무 커지면 자유를 잃을지도.” 그의 예감은 맞았다. 2008년,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MySQL AB를 10억 달러에 샀다. 몬티는 기뻤지만, 불안도 커졌다.

    2009년, 오라클이 썬을 인수했다. 몬티의 손에서 MySQL이 떠났다. “내가 만든 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야,” 그는 북풍이 부는 창가에서 중얼거렸다. 그는 떠났고, 곧 마리아DB라는 새 씨앗을 심었다. 하지만 MySQL은 멈추지 않았다. 오라클 아래서도 진화하며, 전 세계 서버에서 뛰었다.

    2015년, 스톡홀름의 겨울. 몬티는 딸 My와 함께 눈 덮인 거리를 걸었다. “아빠가 만든 게 세상에 남았어?” My가 물었다. 몬티는 하늘을 보며 대답했다. “남았지. 그리고 계속 자랄 거야.” 1994년의 그 방에서 뿌린 씨앗은, 북풍을 넘어 세계를 뒤덮은 나무가 되었다.

    2009년, 핀란드 헬싱키의 겨울은 깊고 차가웠다. 몬티 위데니우스는 집 서재에서 낡은 데스크톱 앞에 앉아 있었다. 창밖엔 북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눈을 실어 나르고, 화면엔 그가 14년 전 만든 MySQL 코드가 깜빡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이제 그의 것이 아니었다. 오라클이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를 인수하면서 MySQL은 거대한 손아귀에 들어갔다. “내 꿈이 이렇게 끝날 순 없어,” 몬티는 중얼거렸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결심했다. “다시 시작해야 해.” MySQL의 뿌리를 살려 새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이름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마리아DB(MariaDB)—그의 막내딸 마리아의 이름을 딴 것. “MySQL이 내 첫째 딸을 위한 거였다면, 이건 마리아를 위한 거야,” 그는 미소 지었다. 자유와 개방의 정신을 지키는, 새로운 데이터베이스였다.

    몬티는 키보드를 잡았다. MySQL 5.1을 포크(fork)해 코드를 뜯어고쳤다. 속도를 높이고, 보안을 강화하고, 새로운 엔진을 추가했다. “오라클이 닫으려는 문을 내가 열어줄 거야.” 그는 밤을 새우며 작업했다. 아리아(Aria)라는 저장 엔진은 원래 ‘마리아’로 불렸지만, 혼란을 피하려 이름을 바꿨다. 그래도 프로젝트의 심장은 ‘마리아’로 뛰었다.

    며칠 뒤, 그는 메일링 리스트에 글을 올렸다. “MySQL의 대안, 마리아DB를 시작했어요. 같이 만들 사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전 세계 개발자들이 모여들었다. 스웨덴의 해커가 버그를 고쳤고, 미국의 프로그래머가 성능을 개선했다. 몬티는 놀랐다. “이건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구나.”

    2010년, 오라클의 그림자가 짙어졌다. MySQL 사용자들은 불안해했다. “오라클이 문을 잠갔다고? 그럼 우리 문을 열자.” 몬티는 마리아DB를 GPL 라이선스 아래 완전히 개방했다. 같은 해, 마리아DB 5.1이 나왔다. 단순했지만 강력했다. 기업들이 눈을 돌렸다. 위키피디아, 구글—거대 사용자들이 마리아DB를 품었다.

    2012년, 몬티는 더 큰 걸 꿈꿨다. “이건 커뮤니티의 것이어야 해.” 그는 마리아DB 재단을 설립했다. 데이비드 액스마크와 앨런 라슨 같은 옛 동료들이 힘을 보탰다. “오라클 같은 거대 기업에 다시 넘어가지 않게 지킬 거야.” 재단은 투명성을 약속했고, 개발은 공개적으로 이어졌다.

    시간이 흘렀다. 2014년, 마리아DB 10.0이 나왔다. 오라클의 MySQL을 뛰어넘는 기능—컬럼스토어, JSON 지원—이 빛났다. 몬티는 헬싱키의 밤하늘을 보며 맥주를 들었다. “이건 단순한 코드가 아니야. 자유의 증거야.” 커뮤니티는 수천 명으로 불어났다. 2023년, 오라클의 그늘을 피해 K1 투자 그룹이 마리아DB를 인수했지만, 재단의 약속은 흔들리지 않았다.

    어느 겨울밤, 몬티는 딸 마리아와 창밖을 봤다. 북해 위 별빛이 반짝였다. “아빠가 만든 게 세상을 바꿨다고?” 마리아가 물었다. 몬티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세상이 같이 만든 거야.” 그 별빛 아래, 마리아DB는 자유의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 혼돈 속의 가지

    혼돈 속의 가지

    2005년, 핀란드 헬싱키의 봄은 아직 쌀쌀했다. 리누스 토르발스는 집 거실에서 낡은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화면엔 리눅스 커널 코드가 깜빡였고, 그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다. 몇 주 전, 비트키퍼(BitKeeper)라는 버전 관리 시스템이 무너졌다. 리눅스 커뮤니티는 그 도구에 의존했지만, 라이선스 문제로 개발자들이 등을 돌렸다. “이건 터무니없어,” 리누스는 중얼거렸다. “내가 직접 만들어야겠어.”

    그는 커피를 들고 책상에 앉았다. “빠르고, 분산되고, 단순해야 해.” 리눅스를 만들 때처럼, 그는 혼돈을 질서로 바꾸는 법을 알았다. 키보드가 춤을 췄다. 파일의 변화를 추적하고, 브랜치를 나누고, 합치는 시스템. 며칠 밤을 새운 끝에, 그는 첫 번째 코드를 완성했다. 이름은 고민하지 않았다. 깃(Git)—영국 속어로 ‘멍청이’라는 뜻. “이건 나 자신을 위한 거야,” 그는 농담처럼 말했다.

    리누스는 리눅스 메일링 리스트에 글을 올렸다. “새로운 버전 관리 도구를 만들었어요. 써보세요.”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이게 뭐야?” “너무 복잡해!” 하지만 몇몇은 호기심을 가졌다. 주니치 우에카와 같은 해커가 코드를 뜯어보며 말했다. “이건… 강력하네.” 깃은 중앙 서버 없이 누구나 코드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분산된 자유의 맛이었다.

    며칠 뒤, 리누스는 깃으로 리눅스 커널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브랜치가 나뉘고, 커밋이 쌓였다. “혼돈이 아니라 가지야,” 그는 깨달았다. 커뮤니티는 점점 깃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불만도 있었다. “명령어가 너무 어려워!” “UI가 없잖아!” 리누스는 코웃음을 쳤다. “깃은 도구야, 장난감이 아니야. 배워서 써.”

    2005년 여름, 깃은 오픈소스로 공개됐다. 소스 코드는 인터넷을 타고 퍼졌다. 토르스텐 글라저가 독일에서 기능을 추가했고, 미국의 개발자가 버그를 고쳤다. 리누스는 놀랐다. “내가 다 할 필요가 없네.” 깃은 그의 손을 떠나 커뮤니티의 것이 됐다.

    2008년, 깃허브(GitHub)가 나타났다. 트래비스와 크리스가 만든 이 플랫폼은 깃을 더 쉽게 썼다. 리누스는 흥미롭게 지켜봤다. “내가 만든 괴물이 이렇게 예뻐질 줄이야.” 깃허브는 깃을 전 세계로 퍼뜨렸다. 스타트업, 대기업, 학생—모두가 깃으로 코드를 공유했다.

    2015년, 헬싱키의 가을. 리누스는 가족과 저녁을 먹다 문득 창밖을 봤다. 나무 가지처럼 뻗은 거리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깃은 이제 수백만 프로젝트의 뿌리였다. “내가 혼자 시작했지만, 혼자 끝낸 게 아니야,” 그는 생각했다. 어느 날, 한 개발자가 메일로 물었다. “깃을 왜 만들었어요?” 리누스는 짧게 답했다. “짜증났으니까.”

    밤이 깊었다. 노트북 화면엔 깃 로그가 떠 있었다. 커밋 하나하나가 가지처럼 얽혀 있었다. 2005년의 그 짜증은, 세상을 바꾼 혼돈 속의 질서가 되었다.

  • 이상형의 좀비를 만난 이야기

    이상형의 좀비를 만난 이야기

    어느 날, 세상은 끝났다. 아니, 적어도 내가 알던 세상은 끝났다. 좀비 아포칼립스가 시작된 지 석 달째, 거리는 폐허가 되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숨을 곳을 찾아 필사적으로 헤맸다. 나 역시 낡은 배낭 하나에 의지하며 도시 외곽의 버려진 창고를 전전하고 있었다. 생존은 단순한 목표였다: 먹을 것을 찾고, 물을 구하고, 좀비를 피하라. 하지만 그날, 나는 예상치 못한 존재를 만났다. 이상형의 좀비를.
    그날 아침, 나는 창고 근처의 슈퍼마켓 폐허로 향했다. 통조림 몇 캔을 찾을 요량이었다. 거리는 고요했고, 바람에 굴러다니는 플라스틱 병 소리만이 적막을 깼다. 슈퍼마켓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냄새—썩은 고기와 먼지 섞인 공기가 코를 찔렀다. 나는 조심스럽게 통로를 지나며 바닥에 흩어진 물건들을 살폈다. 그러다 문득,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좀비였다.
    나는 즉시 몸을 숙이고 선반 뒤에 숨었다. 숨을 죽이고 소리가 나는 방향을 살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신음은 위협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궁금한 듯한, 하이톤이 많이 섞인 소리였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겼다. 나는 살짝 고개를 내밀어 통로 끝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좀비였다. 분명히 좀비였다. 창백한 피부, 흐릿한 눈동자, 그리고 어설프게 찢어진 옷은 좀비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의 머리에는 초록색 리본이 묶여 있었고, 한쪽 손에는 낡은 곰 인형을 꼭 쥐고 있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걷다가 선반에 걸려 넘어졌고, 그러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곰 인형을 내려다보며 작게 “으으…” 하고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던지, 나는 순간 내가 좀비 아포칼립스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그녀를 관찰했다. 그녀는 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녀는 곰 인형을 들어 올리더니 마치 대화를 나누듯 중얼거렸다. “으… 곰이… 배고프?”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어딘가 순수함이 묻어났다.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을 틀어막았다. 이게 대체 뭐지? 좀비가 귀여울 수 있나?
    용기를 내어 선반 뒤에서 나왔다. 그녀는 고개를 들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흐릿한 눈이 나와 마주쳤지만, 공격적인 기색은 없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어… 안녕?” 내 목소리는 떨렸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곰 인형을 내게 내밀었다. “으… 친구?”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녀는 다른 좀비들과 달랐다. 그녀는 여전히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살아 있을 때의 감정을, 혹은 누군가와의 연결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 옆에 앉았다. “그래, 친구.” 나는 그녀의 곰 인형을 받아들며 말했다.
    그날, 나는 그녀와 몇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곰 인형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 나는 그녀가 살아 있을 때 어떤 사람이었을지 상상했다. 아마도 밝고, 따뜻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초록색 리본과 곰 인형은 그녀가 잃고 싶지 않은 과거의 조각 같았다.
    해가 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떠나야 했다. 생존은 여전히 내 첫 번째 목표였고, 그녀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통조림 하나를 건넸다. “이거… 곰이 먹어.” 그녀는 통조림을 받아들고 다시 “으으…” 하며 미소를 짓는 듯했다. 나는 그녀를 뒤로하고 창고로 돌아왔다. 마음 한구석이 무겁고, 동시에 따뜻했다.
    그 후로 나는 그녀를 다시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만남은 내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변한 세상에서도, 그녀는 내게 생존 이상의 무언가를 가르쳐 주었다. 어쩌면, 우리가 정말로 지켜야 하는 것은 그런 작은 순간들, 그리고 그 안의 인간다움인지도 모른다.

  • 태양 아래의 연결

    태양 아래의 연결

    2004년, 런던의 늦여름. 마크 셔틀워스는 작은 사무실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하늘은 맑았고, 그의 머릿속은 더 맑았다. 몇 년 전, 그는 우주로 날아간 남아프리카 출신의 첫 민간 우주인이었다. 지구를 떠난 그 경험은 그를 바꿨다. “세상은 하나로 연결될 수 있어,” 그는 생각했다. 이제 그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컴퓨터를 누구나 쓸 수 있게 만드는 것.

    마크는 데비안 리눅스를 사랑했다. 자유롭고 강력했지만, 초보자에게는 너무 험난했다. “일반 사람들도 쉽게 쓸 수 있는 리눅스가 필요해.” 그는 책상에 앉아 노트에 아이디어를 적었다. 이름은 남아프리카의 철학에서 따왔다. 우분투(Ubuntu)—‘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뜻. “이건 기술이 아니라 사람에 관한 거야,” 그는 중얼거렸다.

    그는 팀을 모았다. 전 세계에서 온 괴짜들—프랑스의 개발자, 인도의 해커, 미국의 디자이너. “6개월 안에 배포판을 만들어요. 무료로, 누구나 쓸 수 있게.” 마크의 선언에 팀은 놀랐다. “불가능해요,”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마크는 웃었다. “내가 우주에 갔던 걸 생각하면, 이건 쉬워.”

    사무실은 곧 활기로 넘쳤다. 데비안을 뼈대로 삼아, 그들은 인터페이스를 다듬었다. GNOME을 얹고, 설치 과정을 단순화했다. “클릭 몇 번으로 끝나야 해,” 마크는 강조했다. 밤마다 커피와 피자 상자가 쌓였고, 코드가 쌓였다. 2004년 10월 20일, 우분투 4.10 ‘Warty Warthog’가 세상에 나왔다. 이름은 농담처럼 붙였다. “완벽하진 않지만, 시작이야.”

    마크는 배포판을 무료로 공개했다. 심지어 CD를 우편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돈이 없어도 누구나 써야 해.” 전 세계에서 주문이 쏟아졌다. 남아프리카의 학생, 인도의 교사, 브라질의 프로그래머—우분투는 그들의 손에 닿았다. 포럼엔 감사의 글이 넘쳤다. “이게 리눅스라고?” “너무 쉬워!”

    하지만 도전도 있었다. 데비안 커뮤니티는 우분투를 의심했다. “너무 상업적이야,” “자유를 팔아먹었어,”라는 비판이 나왔다. 마크는 고개를 저었다. “우린 자유를 더 많은 사람에게 주려는 거야.” 그는 캐노니컬(Canonical)이라는 회사를 세워 프로젝트를 뒷받침했다. 돈은 필요했다. 서버를 돌리고, 개발자를 먹여 살리려면.

    시간이 흘렀다. 우분투는 진화했다. 6.06 LTS는 안정성을 자랑했고, 10.04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사랑받았다. 마크는 사무실에서 팀과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우리가 만든 건 운영체제가 아니야. 연결이야.” 그의 말대로였다. 우분투는 학교, 사무실, 심지어 클라우드까지 퍼졌다.

    2011년, 유니티(Unity) 인터페이스를 도입하며 논란이 일었다. “너무 무거워!” 사용자들이 반발했다. 마크는 고민했다. “우리가 너무 앞서갔나?” 결국 유니티는 물러났고, GNOME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원하는 걸 들어야 해,” 그는 결론 내렸다.

    2023년, 런던의 가을. 마크는 사무실 창밖을 보며 미소 지었다. 우분투 23.10 ‘Mantic Minotaur’가 막 나왔다. 수백만 명이 그것을 쓰고 있었다. 남아프리카의 한 마을에서, 아이가 우분투로 코딩을 배웠다. 마크는 우주에서 본 지구를 떠올렸다.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 그의 꿈은 태양 아래,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 얼음 위의 불씨

    얼음 위의 불씨

    1991년, 헬싱키의 겨울은 매서웠다. 리누스 토르발스는 대학 기숙사 방에서 낡은 386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창밖엔 눈이 쌓이고, 방 안엔 전자기기의 따뜻한 열기와 키보드 소리만이 가득했다. 스무 살의 리누스는 유닉스 책을 펼쳐놓고 코드를 짜고 있었다. 그가 사랑한 유닉스(Minix)는 강력했지만, 제약이 많았다. “내가 원하는 건 더 자유로운 거야,”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리누스는 몇 달 전부터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터미널 에뮬레이터로 시작한 코드는 점점 커졌다. 파일을 읽고, 프로세스를 관리하고, 디스크를 제어하는 기능이 하나씩 쌓였다. 그는 잠을 줄이고 커피를 늘리며 밤을 보냈다. “이건 그냥 취미일 뿐이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Minix 사용자 그룹에 글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386용 무료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어요. 그냥 재미로 하는 거지만, 관심 있으면 봐주세요.”
    그는 파일을 올리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메일함은 터져 있었다. “코드 보내주세요!” “어떻게 돼요?” 전 세계의 프로그래머들이 반응했다. 리누스는 얼떨떨했다. “뭐야, 진짜로 관심 있는 거야?”

    이름은 고민 끝에 정했다. 리눅스(Linux). 자기 이름에서 따온 건 좀 쑥스러웠지만, 어쩐지 잘 어울렸다. 그는 소스 코드를 공개했다. “누구든 고치고 싶으면 고쳐도 돼요.” 그 결정은 폭풍을 일으켰다. 핀란드의 작은 방에서 시작된 코드는 인터넷을 타고 퍼졌다. 독일의 해커가 버그를 잡았고, 미국의 학생이 기능을 추가했다. 리누스는 메일을 읽으며 웃었다. “내가 만든 게 이렇게 커질 수가 있나?”

    1992년, 리눅스는 점점 모양을 갖췄다. 하지만 문제도 생겼다. Minix의 창시자 앤드류 타넨바움이 반발했다. “리눅스는 구식이야. 설계가 엉망이야!” 온라인에서 논쟁이 붙었다. 리누스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반박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돼요. 중요한 건 사람들이 쓰고 싶어 한다는 거예요.” 그 말대로였다. 리눅스는 단순하고 자유로웠다. 누구나 뜯어보고 고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커뮤니티는 거대해졌다. 리누스는 기숙사를 떠나 작은 아파트로 옮겼지만, 여전히 혼자였다. 그는 코드를 리뷰하고, 패치를 적용하며 중심을 잡았다. “내가 다 할 필요는 없어. 다 같이 만드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어느 날, 누군가 턱시도를 입은 펭귄 이미지를 보냈다. “리눅스의 마스코트로 어때요?” 리누스는 피식 웃었다. 턱스(Tux)라는 이름이 붙었다.

    1994년, 리눅스 1.0이 나왔다. 헬싱키의 눈 덮인 거리에서 리누스는 친구들과 맥주를 들었다. “이제 진짜 운영체제야,” 친구가 말했다. 리누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시작이야.” 그의 예감은 맞았다. 리눅스는 서버, 슈퍼컴퓨터, 심지어 안드로이드까지 뻗어나갔다. 얼음 위에서 피운 작은 불씨는 세상을 따뜻하게 덥혔다.

    어느 겨울밤, 리누스는 창밖을 보며 미소 지었다. 화면엔 턱스가 깜빡이고, 메일함엔 여전히 전 세계의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내가 만든 게 아니야,” 그는 중얼거렸다. “우리 모두가 만든 거지.” 헬싱키의 추운 방에서 시작된 꿈은 이제 전 세계의 손끝에서 숨 쉬고 있었다.

  • 거미줄의 시작

    거미줄의 시작

    1989년, 스위스 제네바 근처의 CERN 연구소. 팀 버너스-리는 복도 끝 사무실에서 낡은 NeXT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론 알프스 산맥이 어렴풋이 보였고, 그의 책상엔 종이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서른넷의 팀은 물리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정보의 흐름에 푹 빠져 있었다. “이 데이터들은 서로 연결돼야 해,” 그는 중얼거렸다.

    CERN은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모인 곳이었지만, 혼란이었다. 실험 데이터, 논문, 메모—모두 제각각 흩어져 있었다. 팀은 꿈꿨다. 모든 정보를 하나로 묶는 시스템을. 그는 몇 년 전부터 ‘ENQUIRE’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더 큰 걸 해야 해. 전 세계를 잇는 거야.”

    어느 날, 그는 상사 로버트 카이야우에게 제안을 던졌다. “정보를 하이퍼텍스트로 연결하면 어떨까요?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요.” 로버트는 눈썹을 치켰다. “팀, 그게 가능해?” 팀은 단호했다. “제가 해볼게요.” 허락은 떨어졌다. 코드명은 없었다. 그냥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이라 불렀다.

    팀은 키보드를 잡았다. HTML—정보를 구조화하는 언어. HTTP—정보를 주고받는 규칙. URL—정보의 주소를 정하는 체계. 그는 밤을 새우며 코드를 썼다. “이건 거미줄 같아야 해. 모든 게 얽히고 연결돼야 해.” 1990년, 첫 웹사이트가 완성됐다. NeXT 화면에 “http://info.cern.ch”가 떴다. “세계 최초의 웹페이지야,” 그는 웃었다.

    하지만 혼자였다. 팀은 동료들에게 보여줬다. “이걸로 논문을 공유할 수 있어요!” 반응은 미지근했다. “너무 복잡해.” 팀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브라우저를 만들었다. “WorldWideWeb”이라는 이름의 소프트웨어. 클릭하면 정보가 펼쳐졌다. “이제 이해하겠지?”

    1991년 8월, 팀은 인터넷 뉴스그룹에 글을 올렸다. “웹을 공개했어요. 무료로 써보세요.” 소문이 퍼졌다. 연구소 밖으로, 대학교로, 전 세계로. “이게 뭐야?” “너무 쉬워!” 개발자들이 코드를 뜯어보며 확장했다. 팀은 조건을 걸었다. “특허 없어요. 누구나 써도 돼요.” 그의 꿈은 돈이 아니라 연결이었다.

    1993년, 웹은 날았다. 모자이크 브라우저가 나오며 대중이 손을 댔다. 팀은 CERN 밖으로 나와 W3C를 세웠다. “웹은 열려 있어야 해.” 하지만 위기도 왔다. 기업들이 돈 냄새를 맡았다. “특허를 내라!”라는 압박이 쏟아졌다. 팀은 버텼다. “이건 인류의 것이야.”

    2019년, 제네바의 밤. 팀은 창밖을 보며 맥주를 들었다. WWW는 30년 만에 세상을 뒤덮었다. “내 거미줄이 이렇게 커질 줄이야,” 그는 미소 지었다. 페이스북, 구글, 모든 웹이 그의 씨앗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는 걱정도 했다. “너무 커져서 통제할 수 없게 됐어.”

    알프스 바람이 불었다. 1989년의 그 사무실에서 시작된 거미줄은, 이제 전 세계를 감싸는 그물이 되었다.

  • 창고 속의 꿈 : 매킨토시(Macintosh) 이야기

    창고 속의 꿈 : 매킨토시(Macintosh) 이야기

    1981년,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애플의 본사 한구석에 자리 잡은 창고는 먼지와 땀 냄새로 가득했다. 형광등 아래, 스티브 잡스는 낡은 책상에 앉아 스케치북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그의 앞엔 제프 래스킨이 가져온 이상한 기계가 놓여 있었다. 작고 네모난 상자, 단출한 화면, 그리고 키보드 하나. “이게 미래야, 스티브.” 제프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엔 확신이 묻어났지만, 스티브의 눈빛은 회의적이었다.

    “이건 너무 느려. 그리고 별로 안 예뻐.” 스티브가 툭 내뱉었다. 제프는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기술은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거야. 급할 필요 없어.” 하지만 스티브는 급했다. 그는 제록스 PARC에서 본 것을 잊을 수 없었다. 마우스, 아이콘, 창—컴퓨터가 사람처럼 말하는 듯한 그 인터페이스. “우린 저걸 뛰어넘어야 해,” 스티브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며칠 뒤, 스티브는 창고로 팀을 끌고 왔다. 버렐 스미스, 앤디 허츠펠드, 빌 앳킨슨—각기 다른 괴짜들이었다. “우린 세상을 바꿀 컴퓨터를 만들 거야. 이름은 매킨토시.” 스티브의 선언에 팀은 반신반의했지만, 그의 열정은 전염성이 있었다. 제프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사람이었지만, 스티브가 들어오면서 모든 게 뒤바뀌었다. 제프는 점점 밀려났고, 스티브는 매킨토시를 자신의 비전으로 물들였다.

    창고는 곧 전쟁터가 되었다. 버렐은 밤을 새우며 회로를 설계했고, 앤디는 코드를 짜다 키보드에 엎어져 잠들었다. 빌은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다듬으며 “이건 예술이야!”라고 외쳤다. 스티브는 그들 사이를 오가며 채찍과 당근을 휘둘렀다. “이건 엉망이야!”라며 소리를 지른 뒤, 다음 순간엔 “너희는 천재야”라며 어깨를 두드렸다. 팀은 지쳤지만, 이상하게도 그를 미워할 수 없었다.

    1983년 여름, 첫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 스티브는 화면에 떠오른 “Hello”라는 단어를 보며 미소 지었다. 마우스를 클릭하면 창이 열리고, 아이콘이 움직였다. 하지만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속도는 느렸고, 메모리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걸로 게임 하나 제대로 못 돌리겠네,” 앤디가 투덜거렸다. 스티브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최적화해. 무조건 빨라져야 해.”

    시간은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애플 내부에선 매킨토시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너무 비싸. 누가 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스티브는 더 독해졌다. 그는 팀을 몰아붙이며 “이건 그냥 기계가 아니야. 사람들의 삶을 바꿀 거라고!”라고 외쳤다. 어느 날 밤, 버렐이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스티브, 우리가 이걸 왜 하는 거지?” 스티브는 잠시 멈추더니 말했다. “세상에 흔적을 남기려고.”

    1984년 1월 24일, 샌프란시스코 플린트 센터. 스티브는 검은 터틀넥을 입고 무대에 섰다. 수천 명의 눈이 그를 향했다. 그는 가방에서 매킨토시를 꺼내 스위치를 켰다. 화면이 밝아지며 합성음이 흘렀다. “Hello, I’m Macintosh. Nice to meet you.” 관객은 숨을 멈췄고, 곧 환호가 터졌다. 창고에서 보낸 수백 개의 밤이 그 순간 빛을 발했다.

    무대 뒤, 팀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제프는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씁쓸히 웃었다. 그의 꿈은 스티브의 손에서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지만, 어쨌든 세상에 나왔다. 매킨토시는 단순한 컴퓨터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능성의 상징이었다.

    그날 밤, 창고는 텅 비었다. 형광등 아래 남은 건 땀과 열정의 흔적뿐이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매킨토시의 부드러운 부팅 소리가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 비의 밤, 코드의 시작 : MS-DOS 이야기

    비의 밤, 코드의 시작 : MS-DOS 이야기

    1980년, 시애틀의 밤은 비로 젖어 있었다. 팀 패터슨은 작은 아파트의 책상에 앉아 PDP-11 미니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화면엔 녹색 글자들이 깜빡였고, 방 안엔 커피 냄새와 전자기기의 윙윙거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그는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츠(SCP)라는 작은 회사에서 일하며, 취미 삼아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었다. 이름은 QDOS. ‘Quick and Dirty Operating System’—빠르고 지저분한 운영체제. 이름처럼 단순했지만, 그의 손끝에서 점점 생명을 얻고 있었다.

    “이걸로 86-DOS라고 부르면 어떨까?” 팀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인텔 8086 프로세서를 겨냥한 이 시스템은 복잡한 메인프레임이 아니라, 개인이 쓸 수 있는 작은 컴퓨터를 위한 것이었다. 그는 대기업의 거대한 소프트웨어가 아닌,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꿈꿨다.

    같은 시각, 시애틀에서 멀지 않은 벨뷰의 애플비 애비뉴. 빌 게이츠는 폴 앨런과 함께 허름한 사무실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IBM이라는 거물이 그들에게 연락을 해왔다. “PC 프로젝트에 운영체제가 필요해요. 할 수 있겠소?” IBM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빌은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준비돼 있어요.” 사실 준비된 건 없었다. 그들의 회사는 BASIC 언어로 돈을 벌고 있었지만, 운영체제는 손도 안 댄 분야였다.

    “빌, 우리 운영체제 없잖아.” 폴이 전화를 끊자마자 말했다. 그의 눈엔 불안이 묻어났다.
    “그러니까 찾아야지.” 빌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책상 위에 흩어진 서류를 뒤지며 말했다.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츠에 뭔가 있다던데. 팀 패터슨인가 하는 녀석이 만든 거.”

    며칠 뒤, 빌과 폴은 팀을 만났다. 비가 내리는 카페에서 팀은 QDOS에 대해 설명했다. “간단해요. 파일 관리하고, 프로그램 돌리고. 화려하진 않지만 쓸모 있죠.” 빌은 그의 말을 들으며 눈을 빛냈다. “이걸 사겠습니다. 얼마면 됩니까?” 팀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5만 달러면 어때요?” 빌은 속으로 웃었다. IBM과의 계약이 성사되면 그보다 훨씬 큰 돈이 굴러들어올 터였다.

    1981년 여름, 애플비 애비뉴의 사무실은 전쟁터가 됐다. 빌은 팀의 QDOS를 들여와 다듬기 시작했다. 이름도 바꿨다. MS-DOS. 마이크로소프트 디스크 운영체제. 코드 몇 줄을 고치고, IBM의 요구에 맞춰 기능을 추가했다. “이건 단순해야 해. 누구나 쓸 수 있을 정도로,” 빌은 팀원들에게 다그쳤다. 밤낮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그들은 MS-DOS 1.0을 완성했다.

    IBM PC가 세상에 나왔다. 1981년 8월 12일, 회색 상자와 함께 MS-DOS가 탑재된 컴퓨터가 상점에 깔렸다. 첫날은 조용했지만,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이거 싸고 쓸만하네,” 사람들이 말했다. MS-DOS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래픽도, 마우스도 없었다. 하지만 단순함이 힘을 발휘했다. 프로그래머들은 그 위에 소프트웨어를 얹었고, 회사들은 문서 작업에 썼다.

    팀은 어느 날 TV에서 IBM PC 광고를 봤다. 화면엔 그의 QDOS가 뿌리로 자리 잡은 MS-DOS가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저걸 시작했는데…” 그는 씁쓸히 웃었다. 5만 달러는 적은 돈이 아니었지만, 빌 게이츠가 그걸로 얻게 될 부는 상상 이상이었다.

    빌은 사무실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비는 그쳤고, 시애틀의 하늘은 맑았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그는 중얼거렸다. MS-DOS는 단순한 도구였지만, 그 도구가 세상을 컴퓨터 앞으로 끌고 왔다. 비의 밤에 시작된 작은 코드는 이제 거대한 제국의 첫걸음이 되었다.

  • 친구 사이에 키스 정도는 괜찮잖아

    친구 사이에 키스 정도는 괜찮잖아

    어릴 적부터 민수와 지영은 단짝이었다. 둘은 서로를 보면 늘 놀리기 바빴다. 민수가 “야, 너 얼굴 진짜 못생겼다!“라고 쏘아붙이면, 지영은 “너나 거울 보고 말해, 등신아!“라며 받아쳤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자란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모태 솔로였다. 연애? 그건 남들 얘기였다.

    어느 날 저녁, 지영이 민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오늘 술 마실래?”
    민수는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웬 술이야?”
    “그냥 심심해서. 빨리 와!” 지영의 목소리는 이미 살짝 들떠 있었다.
    술집에서 만난 둘은 맥주를 들이켰다. 민수는 한두 잔으로 끝내려 했지만, 지영은 잔을 거푸 비우더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술기운이 돌자 지영이 느닷없이 물었다.
    “너, 키스해 본 적 있어?”
    민수는 맥주를 뿜을 뻔했다. “뭐? 아니, 없어. 너는?”
    지영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없어. 근데 궁금하지 않아? 키스가 어떤 느낌일까?”
    민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궁금하긴 하지.”
    그런데 갑자기 지영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 키스해 보고 싶어…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민수는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야, 왜 울어? 너 진짜 취했구나!”
    하지만 지영은 고개를 들고 민수를 똑바로 쳐다봤다. “우리, 키스해 볼래?”
    민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갑자기?”
    “응, 그냥 호기심에. 친구끼리 해보는 거야.” 지영이 술취한 목소리로 고집을 부렸다.
    민수는 망설이다가 결국 말했다. “알았어, 딱 한 번만.”
    둘은 어색하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 입술이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2초도 안 되는 짧은 키스였지만, 민수와 지영의 얼굴은 동시에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어땠어?” 지영이 물었다.
    “음… 잘 모르겠어. 이상했어.” 민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지영은 킥킥 웃었다. “나도. 근데 재미있었어.”

    그날 이후, 둘은 호기심에 키스를 몇 번 더 해봤다. 처음엔 “친구끼리 실험이다”라는 핑계였지만, 점점 어색함은 줄고 묘한 설렘이 생겨났다. 그러던 어느 날, 지영이 또 전화를 걸었다.
    “야, 우리 집에 올래? 키스하고 싶어.”
    민수는 웃으며 말했다. “너 또 취했구나.”
    “아니, 안 취했어! 그냥 하고 싶다고!” 지영이 발끈했다.
    민수는 결국 지영의 집으로 갔다. 소파에 나란히 앉은 둘은 이번엔 좀 더 자연스럽게 키스를 했다. 짧았던 첫 키스와 달리, 이번엔 길고 부드러웠다. 키스가 끝난 후 지영이 물었다.
    “야, 우리 이거 계속 하면 안 돼?”
    “뭘?” 민수가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키스. 그냥 친구끼리 하는 거야.”
    민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좀 이상해. 친구끼리 키스는 안 하는 거야.”
    지영은 입을 삐죽이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난 좋은데…”
    그 순간, 민수는 지영의 눈을 바라봤다. 술에 취해 반짝이는 눈동자 속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러곤 깨달았다. 자기가 지영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야, 우리 사귀어 볼래?” 민수가 불쑥 말했다.
    지영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갑자기?”
    “응, 너 좋아해.” 민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영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피식 웃었다. “나도 너 좋아해, 등신아.”

    그렇게, 둘의 사랑은 키스에서 시작되었다. 모태 솔로의 굴레를 벗어난 민수와 지영은 더 이상 서로를 못생겼다고 놀리지 않았다. 대신, “사랑해”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티격태격하는 연인이 되었다.

    끝.

  • 회색 방의 혁명 : 유닉스 이야기

    회색 방의 혁명 : 유닉스 이야기

    1970년, 뉴저지의 벨 연구소. 복도 끝에 자리 잡은 회색 방은 늘 조용했다. 형광등이 깜빡이며 낮인지 밤인지 구분하기 힘든 그곳에서, 켄 톰슨은 낡은 PDP-7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를 춤추듯 움직였고, 화면엔 끝없이 이어지는 코드가 흘렀다. 옆자리의 데니스 리치는 책상 위에 종이를 잔뜩 펼쳐놓고 연필로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세상과 단절된 섬에 사는 듯 보였다.

    “켄, 이거 정말 될까?” 데니스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엔 피로와 기대가 뒤섞여 있었다.
    “안 되면 우리가 만드는 거지.” 켄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툭 던지듯 말했다. 그의 눈빛엔 고집과 장난기가 동시에 빛났다.

    몇 년 전, 그들은 멀틱스(Multics)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매달렸었다. 여러 사용자가 동시에 시스템을 쓸 수 있는 꿈의 운영체제. 하지만 너무 복잡하고 무거웠다. AT&T가 자금을 끊자, 멀틱스는 쓰레기통 속으로 사라졌다. 그 실패의 잿더미에서 켄은 뭔가를 건져내고 싶었다. 그는 집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잠든 밤마다 PDP-7을 붙잡고 작은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름은 농담처럼 붙였다. 유닉스(UNIX)—멀틱스에서 ‘멀티’를 빼고 단순함만 남긴, 반항적인 이름이었다.

    “멀틱스는 너무 거창했어. 난 그냥 내가 쓰기 편한 걸 만들고 싶었을 뿐이야.” 켄은 어느 날 데니스에게 털어놨다. 그 ‘편한 것’은 곧 두 사람의 집착이 되었다. 데니스는 새로운 언어를 고안해냈다. C언어. 어셈블리어의 복잡함을 덜어내고, 인간과 기계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다리 같은 언어였다. 유닉스는 그 C언어로 다시 태어났다.

    회색 방은 점점 활기로 채워졌다. PDP-11이라는 새 컴퓨터가 들어오면서 유닉스는 더 날렵해졌다. 파일 시스템, 파이프, 멀티태스킹—켄과 데니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아이디어를 하나씩 쌓아갔다. 어느 날, 데니스가 파이프 개념을 제안했다. “프로그램들이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게 하면 어떨까? 물이 흐르듯이.” 켄은 즉시 키보드를 잡고 코드를 썼다. 몇 시간 뒤, 그들은 화면에서 명령어가 물 흐르듯 연결되는 걸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벨 연구소의 높은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다. “그게 뭐에 쓰이는데?”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유닉스는 공식 프로젝트도 아니었다. 그냥 두 괴짜가 낡은 기계로 노는 취미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연구소의 특허 부서에서 문서 작업을 자동화할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왔다. 켄과 데니스는 유닉스를 내밀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느리고 비효율적이던 작업이 순식간에 끝났다. 그제야 사람들은 회색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챘다.

    소문은 퍼졌다. 대학, 연구소, 심지어 정부 기관까지 유닉스를 원했다. AT&T는 운영체제를 상업적으로 팔 수 없었기에 소스 코드를 공개했다. 그 결정은 폭발을 일으켰다. 전 세계의 프로그래머들이 유닉스를 뜯어보고, 고치고, 자신만의 버전을 만들었다. 회색 방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는 거대한 불길이 되었다.

    몇 년 뒤, 켄과 데니스는 연구소 창밖을 바라보며 맥주를 들었다. PDP-7은 이제 박물관의 전시품이 되었고, 유닉스는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우리가 만든 게 이렇게 커질 줄 알았어?” 데니스가 물었다.
    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그냥 게임 하나 돌리고 싶었을 뿐인데.”

    밤이 깊어갔다. 회색 방의 형광등은 여전히 깜빡였지만, 그 빛 아래에서 태어난 유닉스는 이제 세상 곳곳에서 숨 쉬고 있었다. 단순함 속에 숨겨진 혁명, 그건 두 사람의 손끝에서 시작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