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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고 속의 꿈 : 매킨토시(Macintosh) 이야기

    창고 속의 꿈 : 매킨토시(Macintosh) 이야기

    1981년,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애플의 본사 한구석에 자리 잡은 창고는 먼지와 땀 냄새로 가득했다. 형광등 아래, 스티브 잡스는 낡은 책상에 앉아 스케치북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그의 앞엔 제프 래스킨이 가져온 이상한 기계가 놓여 있었다. 작고 네모난 상자, 단출한 화면, 그리고 키보드 하나. “이게 미래야, 스티브.” 제프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엔 확신이 묻어났지만, 스티브의 눈빛은 회의적이었다.

    “이건 너무 느려. 그리고 별로 안 예뻐.” 스티브가 툭 내뱉었다. 제프는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기술은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거야. 급할 필요 없어.” 하지만 스티브는 급했다. 그는 제록스 PARC에서 본 것을 잊을 수 없었다. 마우스, 아이콘, 창—컴퓨터가 사람처럼 말하는 듯한 그 인터페이스. “우린 저걸 뛰어넘어야 해,” 스티브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며칠 뒤, 스티브는 창고로 팀을 끌고 왔다. 버렐 스미스, 앤디 허츠펠드, 빌 앳킨슨—각기 다른 괴짜들이었다. “우린 세상을 바꿀 컴퓨터를 만들 거야. 이름은 매킨토시.” 스티브의 선언에 팀은 반신반의했지만, 그의 열정은 전염성이 있었다. 제프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사람이었지만, 스티브가 들어오면서 모든 게 뒤바뀌었다. 제프는 점점 밀려났고, 스티브는 매킨토시를 자신의 비전으로 물들였다.

    창고는 곧 전쟁터가 되었다. 버렐은 밤을 새우며 회로를 설계했고, 앤디는 코드를 짜다 키보드에 엎어져 잠들었다. 빌은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다듬으며 “이건 예술이야!”라고 외쳤다. 스티브는 그들 사이를 오가며 채찍과 당근을 휘둘렀다. “이건 엉망이야!”라며 소리를 지른 뒤, 다음 순간엔 “너희는 천재야”라며 어깨를 두드렸다. 팀은 지쳤지만, 이상하게도 그를 미워할 수 없었다.

    1983년 여름, 첫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 스티브는 화면에 떠오른 “Hello”라는 단어를 보며 미소 지었다. 마우스를 클릭하면 창이 열리고, 아이콘이 움직였다. 하지만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속도는 느렸고, 메모리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걸로 게임 하나 제대로 못 돌리겠네,” 앤디가 투덜거렸다. 스티브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최적화해. 무조건 빨라져야 해.”

    시간은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애플 내부에선 매킨토시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너무 비싸. 누가 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스티브는 더 독해졌다. 그는 팀을 몰아붙이며 “이건 그냥 기계가 아니야. 사람들의 삶을 바꿀 거라고!”라고 외쳤다. 어느 날 밤, 버렐이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스티브, 우리가 이걸 왜 하는 거지?” 스티브는 잠시 멈추더니 말했다. “세상에 흔적을 남기려고.”

    1984년 1월 24일, 샌프란시스코 플린트 센터. 스티브는 검은 터틀넥을 입고 무대에 섰다. 수천 명의 눈이 그를 향했다. 그는 가방에서 매킨토시를 꺼내 스위치를 켰다. 화면이 밝아지며 합성음이 흘렀다. “Hello, I’m Macintosh. Nice to meet you.” 관객은 숨을 멈췄고, 곧 환호가 터졌다. 창고에서 보낸 수백 개의 밤이 그 순간 빛을 발했다.

    무대 뒤, 팀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제프는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씁쓸히 웃었다. 그의 꿈은 스티브의 손에서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지만, 어쨌든 세상에 나왔다. 매킨토시는 단순한 컴퓨터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능성의 상징이었다.

    그날 밤, 창고는 텅 비었다. 형광등 아래 남은 건 땀과 열정의 흔적뿐이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매킨토시의 부드러운 부팅 소리가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 비의 밤, 코드의 시작 : MS-DOS 이야기

    비의 밤, 코드의 시작 : MS-DOS 이야기

    1980년, 시애틀의 밤은 비로 젖어 있었다. 팀 패터슨은 작은 아파트의 책상에 앉아 PDP-11 미니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화면엔 녹색 글자들이 깜빡였고, 방 안엔 커피 냄새와 전자기기의 윙윙거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그는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츠(SCP)라는 작은 회사에서 일하며, 취미 삼아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었다. 이름은 QDOS. ‘Quick and Dirty Operating System’—빠르고 지저분한 운영체제. 이름처럼 단순했지만, 그의 손끝에서 점점 생명을 얻고 있었다.

    “이걸로 86-DOS라고 부르면 어떨까?” 팀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인텔 8086 프로세서를 겨냥한 이 시스템은 복잡한 메인프레임이 아니라, 개인이 쓸 수 있는 작은 컴퓨터를 위한 것이었다. 그는 대기업의 거대한 소프트웨어가 아닌,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꿈꿨다.

    같은 시각, 시애틀에서 멀지 않은 벨뷰의 애플비 애비뉴. 빌 게이츠는 폴 앨런과 함께 허름한 사무실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IBM이라는 거물이 그들에게 연락을 해왔다. “PC 프로젝트에 운영체제가 필요해요. 할 수 있겠소?” IBM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빌은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준비돼 있어요.” 사실 준비된 건 없었다. 그들의 회사는 BASIC 언어로 돈을 벌고 있었지만, 운영체제는 손도 안 댄 분야였다.

    “빌, 우리 운영체제 없잖아.” 폴이 전화를 끊자마자 말했다. 그의 눈엔 불안이 묻어났다.
    “그러니까 찾아야지.” 빌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책상 위에 흩어진 서류를 뒤지며 말했다.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츠에 뭔가 있다던데. 팀 패터슨인가 하는 녀석이 만든 거.”

    며칠 뒤, 빌과 폴은 팀을 만났다. 비가 내리는 카페에서 팀은 QDOS에 대해 설명했다. “간단해요. 파일 관리하고, 프로그램 돌리고. 화려하진 않지만 쓸모 있죠.” 빌은 그의 말을 들으며 눈을 빛냈다. “이걸 사겠습니다. 얼마면 됩니까?” 팀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5만 달러면 어때요?” 빌은 속으로 웃었다. IBM과의 계약이 성사되면 그보다 훨씬 큰 돈이 굴러들어올 터였다.

    1981년 여름, 애플비 애비뉴의 사무실은 전쟁터가 됐다. 빌은 팀의 QDOS를 들여와 다듬기 시작했다. 이름도 바꿨다. MS-DOS. 마이크로소프트 디스크 운영체제. 코드 몇 줄을 고치고, IBM의 요구에 맞춰 기능을 추가했다. “이건 단순해야 해. 누구나 쓸 수 있을 정도로,” 빌은 팀원들에게 다그쳤다. 밤낮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그들은 MS-DOS 1.0을 완성했다.

    IBM PC가 세상에 나왔다. 1981년 8월 12일, 회색 상자와 함께 MS-DOS가 탑재된 컴퓨터가 상점에 깔렸다. 첫날은 조용했지만,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이거 싸고 쓸만하네,” 사람들이 말했다. MS-DOS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래픽도, 마우스도 없었다. 하지만 단순함이 힘을 발휘했다. 프로그래머들은 그 위에 소프트웨어를 얹었고, 회사들은 문서 작업에 썼다.

    팀은 어느 날 TV에서 IBM PC 광고를 봤다. 화면엔 그의 QDOS가 뿌리로 자리 잡은 MS-DOS가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저걸 시작했는데…” 그는 씁쓸히 웃었다. 5만 달러는 적은 돈이 아니었지만, 빌 게이츠가 그걸로 얻게 될 부는 상상 이상이었다.

    빌은 사무실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비는 그쳤고, 시애틀의 하늘은 맑았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그는 중얼거렸다. MS-DOS는 단순한 도구였지만, 그 도구가 세상을 컴퓨터 앞으로 끌고 왔다. 비의 밤에 시작된 작은 코드는 이제 거대한 제국의 첫걸음이 되었다.

  • 프로그래밍은 사고의 예술이다

    프로그래밍은 사고의 예술이다

    프로그래밍은 흔히 과학이나 기술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컴퓨터라는 기계에 명령을 내리고, 정확한 문법과 논리를 따라 코드를 작성하는 일. 겉보기에는 이성과 규칙이 지배하는 세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프로그래밍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문제를 정의하고, 본질을 꿰뚫어보며, 창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바로 사고의 예술이라 부를 만한 작업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감정이나 사고를 표현하는 행위다. 프로그래밍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프로그래머는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수한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며, 가장 효율적이고 우아한 해법을 찾아낸다. 코드 한 줄 한 줄은 단순한 명령어의 나열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의 결과물이며, 창조적인 결단의 흔적이다.

    프로그래밍의 시작은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다. 그것은 단순히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다. “왜 이 문제가 발생했는가?”, “이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다른 방식으로 정의할 수는 없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이는 마치 철학자의 사유처럼 깊고 본질적이다. 겉으로 드러난 요구사항 이면의 구조와 관계를 파악하고, 필요한 개념을 정제해나가는 것은 순전한 ‘사고’의 영역이다.

    그다음은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이는 작곡가가 악보를 구성하거나, 건축가가 설계도를 그리는 것과 같다. 데이터는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각 기능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할 것인가? 모듈은 어떻게 나누고, 책임은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이 모든 과정은 창의성과 논리의 균형 위에서 이루어진다. 똑같은 기능을 구현하는 수십 가지 방법이 존재하고, 그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개발자의 미적 감각과 경험, 그리고 문제 해결에 대한 철학에 달려 있다.

    실제로 뛰어난 코드는 예술 작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불필요한 반복 없이 간결하며, 구조는 명확하고, 이름은 직관적이고, 흐름은 유려하다. 누가 보더라도 이해하기 쉬운 코드, 읽기만 해도 감탄이 나오는 코드에는 프로그래머의 고뇌와 사고, 미학이 담겨 있다. 반대로, 복잡하고 난해한 코드는 작가의 서투른 문장처럼 느껴진다. 프로그래밍이야말로 가장 현대적인 글쓰기일 수 있다.

    더 나아가, 프로그래밍은 사람과 기계, 그리고 세상을 연결하는 언어다. 프로그래머는 현실의 복잡한 시스템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논리 구조로 바꾸고, 인간의 필요를 알고리즘과 데이터 구조로 해석한다. 이 과정은 창의적인 번역이며, 해석이며, 해석의 예술이다. 코드는 단지 컴퓨터를 위한 언어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재구성하기 위한 도구인 셈이다.

    물론 프로그래밍에는 엄격한 규칙과 문법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캔버스의 크기, 음계의 제한처럼 오히려 창작을 자극하는 틀이 된다. 제약 속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 복잡함 속에서 단순함을 찾아내는 것, 이것이 프로그래머의 역할이다.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시스템을 구성하며, 사용자 경험을 고려하는 모든 과정은 논리와 감성, 분석과 직관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다.

    프로그래밍은 단지 기계를 위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고, 생각을 구현하는 도구다. 코드 한 줄을 짜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지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실패하며, 다시 생각하는가. 이 모든 과정은 사고의 여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할 수 있다. 프로그래밍은 사고의 예술이라고. 그리고 이 예술을 잘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기술이 아니라, 더 나은 질문을 던지는 힘이다.

  • 율리우스 적일

    율리우스 적일

    쥴리안 데이(Julian Day, JD), 또는 율리우스 적일(積日)은 천문학에서 시간을 계산하는 데 사용되는 연속적인 날짜 체계로, B.C. 4713년 1월 1일 그리니치 정오(세계시 12시)를 기준으로 시작하여 현재까지 경과한 날수를 나타냅니다. 이 기준 시점은 율리우스 주기(Julian Period)의 시작으로 정의됩니다.
    JD 2451545.02000년 1월 1일 12시(UT)로, 천문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준점(J2000)입니다.

    JD는 날짜와 시간을 하나의 실수값으로 표현하며, 정수 부분은 날짜를, 소수 부분은 하루 내 시간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JD 2451179.5는 1999년 1월 1일 0시(UT)를 의미하고, 여기서 2451179는 쥴리안 데이 넘버(JDN, Julian Day Number)로 정수 부분만을 가리킵니다.
    시간 단위로 소수점 이하를 계산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JD 2451179.75는 같은 날 18시(0.75 × 24시간)를 나타냅니다.

    천문학에서 천체의 운동, 궤적 계산, 관측 시점 비교 등에 사용됩니다. 연속적인 날수 체계는 달력의 복잡한 윤년 규칙이나 월별 일수 차이를 피할 수 있어 계산이 간편합니다.
    예를 들어, 두 천문 사건 간의 시간 간격을 계산할 때 JD를 빼기만 하면 됩니다.

    JD는 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이나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JD는 단순히 날수를 세는 방식이며, 달력 체계와 혼동하면 안 됩니다.
    JD는 세계시(Universal Time, UT)를 기준으로 하며, 다른 시간 체계와의 변환 시 시간 차이를 고려해야 합니다.

  • 카르다쇼프 척도: 문명의 에너지 수준

    카르다쇼프 척도: 문명의 에너지 수준

    우주를 떠올리면 끝없는 별과 은하, 그리고 어쩌면 우리보다 훨씬 앞선 외계 문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빠지곤 하죠. 이런 상상을 과학적으로 정리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카르다쇼프 척도(Kardashev Scale)예요. 이 척도는 문명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에너지 활용 능력으로 측정하는 흥미로운 도구입니다.

    카르다쇼프 척도란?

    카르다쇼프 척도는 1964년 소련 천문학자 니콜라이 카르다쇼프(Nikolai Kardashev)가 제안한 이론이에요. 그는 문명의 발전 정도를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과 출처로 정의했어요. 쉽게 말해, 문명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컨트롤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들의 기술 수준을 나눈 거죠. 이 척도는 총 세 단계로 나뉘는데, 각 단계마다 문명이 다룰 수 있는 에너지 규모가 엄청나게 커져요.

    유형 I: 행성 문명

    첫 번째 단계는 유형 I 문명이에요. 이 문명은 자기 행성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을 뜻해요. 태양빛, 바람, 파도, 화산 같은 자연 에너지를 완벽히 통제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예를 들어, 지구 전체에서 태양이 보내는 에너지는 약 1.74 × 10¹⁷ 와트인데, 유형 I 문명은 이걸 전부 쓸 수 있는 거예요.

    지금 인류는 여기서 얼마나 가까울까요? 과학자들은 현재 인류를 유형 0.7 정도로 봐요. 화석 연료나 재생 가능 에너지를 쓰고 있지만, 아직 행성 전체의 에너지를 완벽히 활용하는 수준은 아니에요. 그래도 기술이 발전하면서 언젠가 유형 I에 도달할지도 모르죠!

    유형 II: 항성 문명

    다음은 유형 II 문명으로, 이 단계에선 문명이 자기 행성을 넘어 태양 같은 항성의 에너지를 통째로 사용할 수 있어요. SF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다이슨 구체(Dyson Sphere)라는 개념이 여기 해당하는데, 이건 태양을 둘러싸서 그 에너지를 100% 흡수하는 거대한 구조물을 말해요. 이 정도면 에너지 출력이 약 10²⁶ 와트 수준이라, 행성 단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나죠.

    유형 II 문명은 행성을 테라포밍하거나, 우주 여행을 일상처럼 할 수 있을 거예요. 상상만 해도 아찔한 수준이죠. 우리 태양계에서 이런 문명을 찾으려면, 별빛이 이상하게 어두워진 곳을 관측하는 게 단서가 될지도 몰라요.

    유형 III: 은하 문명

    마지막은 유형 III 문명이에요. 이 단계에선 한 은하 전체의 에너지를 장악한다고 상상하면 돼요. 수십억 개의 별과 블랙홀, 은하계의 모든 자원을 활용하는 거죠. 에너지 규모는 약 10³⁶ 와트에 달해요. 이런 문명은 은하 곳곳에 식민지를 만들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기술을 가졌을지도 몰라요. 영화 속 ‘스타워즈’나 ‘듄’ 같은 세계가 이 정도일까요?

    유형 III 문명은 우리가 관측할 수 없을 만큼 멀리 있거나, 너무 고도로 발달해서 흔적을 감추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도 있어요.

    인류의 미래는?

    카르다쇼프 척도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거예요. 유형 0.7에서 유형 I로 가려면 기후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기술을 완성해야 할 테니까요. 유형 II나 III는 지금으로선 꿈같은 이야기지만, 과학과 상상력이 결합하면 불가능할 것도 없지 않을까요?

    이 척도는 단순히 에너지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문명으로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고민하게 해줘요. 우주 속에서 인류가 어디쯤 서 있는지, 또 어디로 가고 싶은지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는 개념이에요. 여러분은 우리가 언젠가 유형 III 문명이 될 수 있다고 믿으세요? 아니면 그 전에 외계의 유형 III 문명을 먼저 만날까요? 상상은 자유니까요!

  • 친구 사이에 키스 정도는 괜찮잖아

    친구 사이에 키스 정도는 괜찮잖아

    어릴 적부터 민수와 지영은 단짝이었다. 둘은 서로를 보면 늘 놀리기 바빴다. 민수가 “야, 너 얼굴 진짜 못생겼다!“라고 쏘아붙이면, 지영은 “너나 거울 보고 말해, 등신아!“라며 받아쳤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자란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모태 솔로였다. 연애? 그건 남들 얘기였다.

    어느 날 저녁, 지영이 민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오늘 술 마실래?”
    민수는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웬 술이야?”
    “그냥 심심해서. 빨리 와!” 지영의 목소리는 이미 살짝 들떠 있었다.
    술집에서 만난 둘은 맥주를 들이켰다. 민수는 한두 잔으로 끝내려 했지만, 지영은 잔을 거푸 비우더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술기운이 돌자 지영이 느닷없이 물었다.
    “너, 키스해 본 적 있어?”
    민수는 맥주를 뿜을 뻔했다. “뭐? 아니, 없어. 너는?”
    지영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없어. 근데 궁금하지 않아? 키스가 어떤 느낌일까?”
    민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궁금하긴 하지.”
    그런데 갑자기 지영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 키스해 보고 싶어…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민수는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야, 왜 울어? 너 진짜 취했구나!”
    하지만 지영은 고개를 들고 민수를 똑바로 쳐다봤다. “우리, 키스해 볼래?”
    민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갑자기?”
    “응, 그냥 호기심에. 친구끼리 해보는 거야.” 지영이 술취한 목소리로 고집을 부렸다.
    민수는 망설이다가 결국 말했다. “알았어, 딱 한 번만.”
    둘은 어색하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 입술이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2초도 안 되는 짧은 키스였지만, 민수와 지영의 얼굴은 동시에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어땠어?” 지영이 물었다.
    “음… 잘 모르겠어. 이상했어.” 민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지영은 킥킥 웃었다. “나도. 근데 재미있었어.”

    그날 이후, 둘은 호기심에 키스를 몇 번 더 해봤다. 처음엔 “친구끼리 실험이다”라는 핑계였지만, 점점 어색함은 줄고 묘한 설렘이 생겨났다. 그러던 어느 날, 지영이 또 전화를 걸었다.
    “야, 우리 집에 올래? 키스하고 싶어.”
    민수는 웃으며 말했다. “너 또 취했구나.”
    “아니, 안 취했어! 그냥 하고 싶다고!” 지영이 발끈했다.
    민수는 결국 지영의 집으로 갔다. 소파에 나란히 앉은 둘은 이번엔 좀 더 자연스럽게 키스를 했다. 짧았던 첫 키스와 달리, 이번엔 길고 부드러웠다. 키스가 끝난 후 지영이 물었다.
    “야, 우리 이거 계속 하면 안 돼?”
    “뭘?” 민수가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키스. 그냥 친구끼리 하는 거야.”
    민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좀 이상해. 친구끼리 키스는 안 하는 거야.”
    지영은 입을 삐죽이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난 좋은데…”
    그 순간, 민수는 지영의 눈을 바라봤다. 술에 취해 반짝이는 눈동자 속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러곤 깨달았다. 자기가 지영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야, 우리 사귀어 볼래?” 민수가 불쑥 말했다.
    지영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갑자기?”
    “응, 너 좋아해.” 민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영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피식 웃었다. “나도 너 좋아해, 등신아.”

    그렇게, 둘의 사랑은 키스에서 시작되었다. 모태 솔로의 굴레를 벗어난 민수와 지영은 더 이상 서로를 못생겼다고 놀리지 않았다. 대신, “사랑해”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티격태격하는 연인이 되었다.

    끝.

  • 나른한 휴일의 오전

    나른한 휴일의 오전

    햇살이 창문 틈으로 스며들어 눈꺼풀을 간질이는 순간, 시계는 이미 아홉 시를 가리키고 있다. 평일이었다면 벌써 세상이 다 끝난 듯한 조급함에 시달렸겠지만, 오늘은 휴일.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조금 더, 그래 조금만 더 누워있기로 한다.

    천장에 그려진 희미한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일렁인다. 어제 읽다 만 소설책이 침대 옆에 놓여있고, 핸드폰에는 읽지 않은 메시지들이 쌓여있겠지만 굳이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 느릿한 흐름 속에 몸을 맡긴다.

    기지개를 켜니 등허리가 끈적하게 늘어진다. 이제 슬슬 일어나야 할까. 아니, 조금만 더. 창밖으로 들리는 새소리가 달콤한 나른함을 더해준다. 행인의 발걸음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세상은 이미 깨어났지만, 나의 세계는 아직 반쯤 꿈속에 잠겨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발바닥이 차가운 바닥에 닿는다. 따뜻한 양말을 신을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맨발로 부엌으로 향한다. 커피 한 잔이 생각나는 순간. 분쇄된 원두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물이 끓는 동안 창가에 서서 바깥을 내다본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며 아스팔트 위에 그림자 놀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커피 잔을 들고 소파에 몸을 묻는다. 음악을 틀까, 책을 읽을까,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선택의 자유로움이 오히려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게 한다. 결국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쓰면서도 달콤한 이 맛, 혀끝에 남는 여운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머릿속에 어제의 일들이 조각조각 떠오른다. 미처 끝내지 못한 일들, 내일로 미뤄둔 약속들. 하지만 오늘은 그 모든 것들을 잠시 내려놓는 날. 시간은 마치 꿀처럼 느릿하게 흐른다.

    문득 배고픔이 느껴진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어제 남은 빵과 잼이 눈에 들어온다. 토스터에 빵을 넣고 기다리는 시간마저 느긋하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빵이 튀어오르고, 버터가 녹아내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작은 행복이 이런 순간에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창가에 앉아 늦은 아침을 먹으며 생각한다. 점심은 뭘 먹을까, 오후에는 무얼 할까. 계획 없는 하루가 주는 자유로움. 그래, 그냥 흘러가는 대로 놔두자. 시간이 흐르고 햇살이 점점 더 짙어질 때, 어쩌면 산책을 나갈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이 자리에서 온종일 게으름을 피울지도.

    나른한 휴일의 오전, 시간은 마치 멈춘 듯 천천히 흐르고, 그 속에서 일상의 작은 행복들이 반짝인다. 이런 순간들을 위해 우리는 바쁜 나날을 견디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회색 방의 혁명 : 유닉스 이야기

    회색 방의 혁명 : 유닉스 이야기

    1970년, 뉴저지의 벨 연구소. 복도 끝에 자리 잡은 회색 방은 늘 조용했다. 형광등이 깜빡이며 낮인지 밤인지 구분하기 힘든 그곳에서, 켄 톰슨은 낡은 PDP-7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를 춤추듯 움직였고, 화면엔 끝없이 이어지는 코드가 흘렀다. 옆자리의 데니스 리치는 책상 위에 종이를 잔뜩 펼쳐놓고 연필로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세상과 단절된 섬에 사는 듯 보였다.

    “켄, 이거 정말 될까?” 데니스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엔 피로와 기대가 뒤섞여 있었다.
    “안 되면 우리가 만드는 거지.” 켄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툭 던지듯 말했다. 그의 눈빛엔 고집과 장난기가 동시에 빛났다.

    몇 년 전, 그들은 멀틱스(Multics)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매달렸었다. 여러 사용자가 동시에 시스템을 쓸 수 있는 꿈의 운영체제. 하지만 너무 복잡하고 무거웠다. AT&T가 자금을 끊자, 멀틱스는 쓰레기통 속으로 사라졌다. 그 실패의 잿더미에서 켄은 뭔가를 건져내고 싶었다. 그는 집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잠든 밤마다 PDP-7을 붙잡고 작은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름은 농담처럼 붙였다. 유닉스(UNIX)—멀틱스에서 ‘멀티’를 빼고 단순함만 남긴, 반항적인 이름이었다.

    “멀틱스는 너무 거창했어. 난 그냥 내가 쓰기 편한 걸 만들고 싶었을 뿐이야.” 켄은 어느 날 데니스에게 털어놨다. 그 ‘편한 것’은 곧 두 사람의 집착이 되었다. 데니스는 새로운 언어를 고안해냈다. C언어. 어셈블리어의 복잡함을 덜어내고, 인간과 기계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다리 같은 언어였다. 유닉스는 그 C언어로 다시 태어났다.

    회색 방은 점점 활기로 채워졌다. PDP-11이라는 새 컴퓨터가 들어오면서 유닉스는 더 날렵해졌다. 파일 시스템, 파이프, 멀티태스킹—켄과 데니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아이디어를 하나씩 쌓아갔다. 어느 날, 데니스가 파이프 개념을 제안했다. “프로그램들이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게 하면 어떨까? 물이 흐르듯이.” 켄은 즉시 키보드를 잡고 코드를 썼다. 몇 시간 뒤, 그들은 화면에서 명령어가 물 흐르듯 연결되는 걸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벨 연구소의 높은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다. “그게 뭐에 쓰이는데?”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유닉스는 공식 프로젝트도 아니었다. 그냥 두 괴짜가 낡은 기계로 노는 취미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연구소의 특허 부서에서 문서 작업을 자동화할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왔다. 켄과 데니스는 유닉스를 내밀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느리고 비효율적이던 작업이 순식간에 끝났다. 그제야 사람들은 회색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챘다.

    소문은 퍼졌다. 대학, 연구소, 심지어 정부 기관까지 유닉스를 원했다. AT&T는 운영체제를 상업적으로 팔 수 없었기에 소스 코드를 공개했다. 그 결정은 폭발을 일으켰다. 전 세계의 프로그래머들이 유닉스를 뜯어보고, 고치고, 자신만의 버전을 만들었다. 회색 방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는 거대한 불길이 되었다.

    몇 년 뒤, 켄과 데니스는 연구소 창밖을 바라보며 맥주를 들었다. PDP-7은 이제 박물관의 전시품이 되었고, 유닉스는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우리가 만든 게 이렇게 커질 줄 알았어?” 데니스가 물었다.
    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그냥 게임 하나 돌리고 싶었을 뿐인데.”

    밤이 깊어갔다. 회색 방의 형광등은 여전히 깜빡였지만, 그 빛 아래에서 태어난 유닉스는 이제 세상 곳곳에서 숨 쉬고 있었다. 단순함 속에 숨겨진 혁명, 그건 두 사람의 손끝에서 시작된 이야기였다.

  • 프로젝트 도가니

    프로젝트 도가니

    “이번 국세청 전산 프로젝트는 반드시 성공시켜야 합니다. 우리 디지털 미래(Digital Future)의 명성이 걸려있어요.”

    김 대표는 회의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회의실 벽에 걸린 예산표에 고정되어 있었다.

    “물론 비용은 최대한 절감해야겠죠. 우리가 입찰에서 이긴 이유가 뭐겠습니까? 가격 경쟁력이죠.”

    회의실에 모인 프로젝트 팀원들은 미묘한 긴장감 속에서 눈빛을 교환했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1. 시작의 불길함

    “클라우드 기반으로 구축하면 확장성이나 유지보수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일 겁니다.”

    백엔드 개발자 박완철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의 깔끔한 셔츠와 단정하게 정돈된 노트와 달리, 그의 눈 밑에는 이미 다크서클이 자리잡고 있었다.

    CTO 최무지 이사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클라우드? 그게 뭐 그렇게 좋다고 난리야? 서버실에 장비 들여놓고 우리가 직접 관리하는 게 가장 안전하지. 요즘 애들은 새로운 거 좋아하기만 하고…”

    김 대표가 눈을 반짝이며 끼어들었다.

    “클라우드면 서버 장비 구매 비용이 절감되나요?”

    “네, 초기 투자 비용은 줄지만, 장기적으로 구독료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확장성과 안정성 측면에서-”

    “구독료라고요? 매달 돈을 내야 한다고요? 안 됩니다. 한 번 사서 끝내는 게 좋겠어요. 최 이사님 말대로 서버 직접 구축하죠.”

    회의실 한쪽에서 입사 3개월 차인 신입 개발자 이코딩이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부트캠프에서 배운 최신 기술 스택은 이제 물 건너간 듯했다.

    2. 선임의 세계관

    “자, 이번 프로젝트는 내가 주도적으로 아키텍처를 설계할 거야.”

    선임 개발자 정하드코딩이 화이트보드 앞에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서서 말했다. 15년 경력의 그는 회사에서 ‘코드의 신’이라 불리웠다. 하지만 그 존경심 뒤에는 그의 고집과 구시대적 방법론에 대한 팀원들의 숨겨진 불만이 있었다.

    “프레임워크나 라이브러리는 최소한으로 사용할 거야. 직접 구현하는 게 항상 최고지. 그래야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어.”

    박완철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정 선임님, ORM을 사용하면 데이터베이스 작업이 훨씬 효율적일 텐데요…”

    “ORM? 그런 거 필요 없어. 내가 SQL 쿼리 직접 짜는 게 더 빨라. 자네 ORM이 어떻게 쿼리 최적화하는지 알아? 내가 20년 가까이 데이터베이스 다뤄온 경험을 그런 도구가 따라올 수 있을까?”

    이코딩이 입술을 깨물었다. 부트캠프에서 배운 모든 현대적인 개발 방법론이 이 프로젝트에서는 금기시되는 듯했다.

    3. 디자인의 혈통

    “여러분, 이분이 우리 UI/UX를 담당해주실 최작가님입니다.”

    CTO 최무지가 환한 미소로 젊은 여성을 소개했다.

    “제 조카입니다. 미대 나왔어요. 그림 솜씨가 아주 뛰어나죠.”

    최디자인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사실 UI/UX는 처음이라 많이 배우려고 합니다. 제 포트폴리오는 주로 유화 작품이에요.”

    개발팀의 표정이 굳어졌다. 박완철은 태블릿으로 급히 무언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프로토타입 툴은 어떤 걸 사용하시나요? Figma? Adobe XD?” 박완철이 물었다.

    “저… 그건 뭔가요? 저는 포토샵만 조금 할 줄 알아요.”

    김 대표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포토샵이면 충분하죠. 화면만 예쁘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외부 업체보다 훨씬 저렴하게 해결되니 좋네요.”

    4. 요구사항의 폭풍

    “기존 요구사항에서 조금 변경된 부분이 있습니다.”

    국세청 측 담당자 강변경씨가 미소를 지으며 회의실에 들어섰다. 개발팀은 이미 그의 출현만으로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사용자 로그인 화면에 공인인증서 로그인 외에도 생체인식 기능을 추가했으면 합니다. 요즘 트렌드잖아요. 그리고 AI 분석 기능도 있으면 좋겠어요.”

    정하드코딩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건 초기 요구사항에 없던 건데요. 개발 일정이 이미 빠듯한데…”

    김 대표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물론 가능합니다! 저희가 최선을 다해 반영하겠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팀원들만 남았을 때, 정하드코딩이 분노를 터뜨렸다.

    “이게 말이 됩니까? 생체인식이요? 우리 서버에 그런 거 구현할 인프라도 없는데!”

    김 대표는 어깨를 으쓱했다. “고객이 원하는 건 해줘야죠. 야근하면 되잖아요? 추가 비용 없이 할 수 있을 거예요.”

    5. 완벽을 향한 고독한 싸움

    밤 11시. 사무실은 어둠에 잠겨있었지만, 한 자리만 밝게 빛나고 있었다. 박완철은 코드를 다시 한 번 검토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코드베이스로는 안정적인 서비스를 구현할 수 없어…”

    그는 정하드코딩이 작성한 1000줄짜리 함수를 보며 절망했다. 변수명은 모두 a1, a2, b1, b2 같은 의미 없는 이름들이었고, 주석은 전혀 없었다.

    “리팩토링해야 해. 이대로는 미래에 유지보수가 불가능해.”

    박완철은 결심했다. 그는 밤새 정하드코딩의 코드를 분해하고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깔끔한 설계, 명확한 변수명, 단위 테스트까지. 그가 추구하는 완벽한 코드를 향해 나아갔다.

    다음 날 아침, 정하드코딩이 자신의 코드가 완전히 바뀐 것을 발견했다.

    “누가 내 코드를 건드린 거야?!” 그의 고함이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6. 신입의 고충

    이코딩은 자신에게 할당된 모듈을 어떻게든 완성하려고 밤낮으로 노력했다. 부트캠프에서 배운 내용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스택오버플로우, 깃허브, 유튜브 튜토리얼을 샅샅이 뒤지며 어떻게든 코드를 작성했다.

    “이코딩 씨, 그 기능 언제 끝나요?” 김 대표가 매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거의 완성됐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의 코드는 작동은 했지만, 수많은 버그와 보안 취약점으로 가득했다. 그는 알았지만, 이대로라도 제출하지 않으면 프로젝트 일정이 밀릴 것이 분명했다.

    “일단 돌아가게만 하자…” 그는 중얼거리며 또 하나의 하드코딩된 임시방편을 추가했다.

    7. 디자인의 재앙

    “이게 뭐죠?” 박완철이 받은 디자인 파일을 보며 경악했다.

    최디자인이 전달한 파일은 300MB짜리 포토샵 파일이었다. 레이어는 정리되어 있지 않았고, 모든 텍스트는 이미지로 래스터화되어 있었다.

    “이걸 어떻게 구현하라는 거죠? 텍스트를 복사할 수도 없고, 반응형으로 만들 방법도 없어요.”

    최디자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디자인만 했는데… 구현은 개발자 일이지 않나요?”

    CTO 최무지가 끼어들었다. “뭐가 문제죠? 디자인 예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개발자가 구현을 못 한다고 디자이너 탓을 하면 안 되지.”

    박완철은 말문이 막혔다. 더 설명해봤자 소용없을 것을 알았다.

    8. 예산의 벽

    “서버 증설이 필요합니다.” 정하드코딩이 김 대표에게 보고했다. “현재 하드웨어로는 요구된 트래픽을 감당할 수 없어요.”

    김 대표의 표정이 굳어졌다. “추가 예산은 없습니다. 입찰 때 이미 모든 비용을 계산해서 제출했잖아요.”

    “하지만 요구사항이 계속 추가되고 있잖습니까.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자원이 필요해요.”

    “그럼 클라우드로 갈까요?” 박완철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안 됩니다!” 김 대표와 최 이사가 동시에 외쳤다.

    “그럼… 최적화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정하드코딩이 한숨을 내쉬었다.

    “네, 최적화하세요. 우리 회사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회사니까요.”

    9. 위기의 정점

    테스트 서버가 오픈된 첫날, 재앙이 시작되었다.

    국세청 측 테스터 10명이 동시에 접속하자마자 서버가 다운되었다. 겨우 복구한 후 다시 테스트를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데이터 불일치 문제가 발생했다.

    “세금 계산이 맞지 않습니다.” 강변경씨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UI가 너무 복잡해요. 사용자들이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회의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생체인식 기능은 어떻게 된 거죠?” 강변경씨가 물었다.

    이코딩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현… 현재 개발 중입니다…”

    “납기일이 2주 남았는데요?”

    김 대표가 간신히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걱정 마세요. 꼭 기한 내에 완료하겠습니다.”

    10. 무너지는 성

    회의가 끝나고 프로젝트팀은 전쟁터같은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대로는 불가능해.” 박완철이 단호하게 말했다. “코드베이스 전체를 재구성해야 해.”

    “시간이 없어!” 정하드코딩이 소리쳤다. “그냥 문제되는 부분만 고치자.”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어서 한 부분만 고치면 다른 부분이 망가져요.”

    이코딩은 구석에서 조용히 울고 있었다. “저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김 대표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좋은 소식입니다! 국세청에서 기능을 더 추가하고 싶대요. 연말정산 시뮬레이션 기능이랑 모바일 앱도 같이 만들어달래요. 물론 추가 비용은…” 그는 목을 가로저으며 미소지었다.

    팀원들의 얼굴에서 피가 빠져나갔다.

    11. 마지막 밤

    납기일 전날 밤. 개발팀은 모두 사무실에 남아 필사적으로 버그를 수정하고 있었다.

    “서버가 또 다운됐어!” 누군가 외쳤다.

    “DB 쿼리가 너무 오래 걸려요. 타임아웃 발생해요!”

    “UI가 IE에서 깨져요!”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박완철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비정상적으로 평온해 보였다.

    “저… 사직서를 제출하겠습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지금? 이 상황에서?” 김 대표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네. 이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잘못됐어요. 기술적 판단은 무시되고, 예산은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요구사항은 계속 늘어나고… 전 더 이상 이런 환경에서 일할 수 없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코딩이 일어섰다.

    “저도 사직하겠습니다. 더 배울 것이 없어요 여기서.”

    김 대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모두들 진정해요. 우리가 힘을 합치면…”

    정하드코딩도 천천히 일어났다. “저도 더 이상은 못 하겠습니다. 이건 개발이 아니라 고문이에요.”

    에필로그

    3개월 후, 디지털 미래는 국세청으로부터 계약 불이행으로 소송을 당했다. 납품된 시스템은 실제 환경에서 완전히 작동하지 않았고, 수많은 세금 계산 오류가 발견되었다.

    김 대표는 회사 파산 후 다른 이름으로 새 회사를 설립했다. 그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다시 국세청 입찰이었다. 그의 제안가는 모든 경쟁사보다 30% 낮았다.

    최무지 이사는 여전히 클라우드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새 회사의 CTO가 되었다.

    정하드코딩은 산으로 들어가 명상을 시작했다고 한다. 가끔 “변수명은 a1이면 충분해…”라고 중얼거린다는 소문이 있다.

    박완철은 외국계 기업에 취직해 적절한 예산, 합리적인 일정, 현대적인 개발 방법론을 갖춘 환경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코딩은 부트캠프 강사가 되어 학생들에게 “현실은 교육과정과 다르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최디자인은 여전히 포토샵으로 UI를 그리고 있지만, 이제는 삼촌이 차린 새 회사에서다.

    강변경씨는 승진해서 이제 더 큰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의 첫 마디는 항상 같다.

    “기존 요구사항에서 조금 변경된 부분이 있습니다…”

    디지털 미래의 국세청 프로젝트는 ‘SI 프로젝트 실패 사례 연구’라는 제목으로 대학 강의에서 다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어디에서도, 누구도 놀라지 않는다.

  • 검은 고양이 비유

    검은 고양이 비유

    “어두운 방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는 것은 어렵다. 특히, 그 방에 고양이가 없을 때는 더 그렇다.”

    이 말은 단순한 유머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여러 철학적·논리적·사회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검은 고양이 비유는 주로 무의미한 탐색,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으려는 시도, 혹은 애초에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을 다루려는 문제를 설명할 때 사용된다.

    1. 검은 고양이 비유의 의미

    (1) 비논리적인 탐색과 맹목적인 추구

    어두운 방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는다는 것은 찾기 어려운 대상을 무턱대고 추적하는 상황을 뜻한다. 특히, 방에 애초에 고양이가 없었다면 그 노력은 완전히 헛된 것이다.

    이 비유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적용된다.
    • 증거 없는 이론을 고집하는 과학 연구
    • 예를 들어, 과거 연금술사들은 “철을 금으로 바꾸는 방법”을 찾기 위해 수 세기 동안 연구했지만, 이는 존재하지 않는 목표였다.
    • 잘못된 가정을 기반으로 한 논쟁
    • “이 음모론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모든 증거가 다 들어맞지 않나?“라고 말하는 것은, 애초에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결론을 내리는 오류다.

    (2) 논리적 모순과 의미 없는 질문

    어두운 방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는 것은 단순히 어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을 정의하려는 문제를 의미하기도 한다.
    • “진정한 무(無)란 무엇인가?”
    • “우리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처럼 애초에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을 탐구하는 과정 자체가 모순적인 경우, 검은 고양이 비유가 적용된다.

    (3) 비효율적인 정책과 행정

    사회에서는 비효율적인 법이나 정책이 자주 등장한다.
    • 불필요한 규제 강화: “잠재적인 위험을 막기 위해 모든 사람의 이동을 감시해야 한다!” → 범죄를 막으려는 의도지만, 효과는 검증되지 않고 오히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다.
    • 무의미한 회의와 절차: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 실질적인 해결책 없이 논의만 이어진다면, 어두운 방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는 것과 다름없다.

    2. 검은 고양이 비유가 적용된 역사적 사례

    (1) 연금술과 과학적 실패

    중세 연금술사들은 “철을 금으로 바꾸는 방법”을 찾기 위해 수백 년 동안 연구했다. 하지만 현대 화학이 발전하면서, 금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결국 연금술은 “어두운 방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는 행위”였던 셈이다.

    (2) 마녀사냥과 음모론

    16~17세기 유럽에서는 마녀사냥이 성행했다. 사람들은 마녀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고, 마녀가 존재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조사를 시작했다. 결국 존재하지 않는 “마녀”를 찾아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검증되지 않은 음모론”을 믿고 증거를 끼워 맞추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외계인이 이미 정부를 조종하고 있다!”라는 가정을 하게 되면, 모든 정보가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증거가 없다면, 이는 검은 고양이를 찾는 것과 같은 행위다.

    3. 검은 고양이 비유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1. 존재 여부를 먼저 확인하라

    •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그 문제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먼저 검증해야 한다.
•   불필요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시간과 자원의 낭비가 될 수 있다.


    2. 잘못된 가정을 경계하라

    •    논리를 전개하기 전에, 애초에 출발점이 잘못되지 않았는지 점검해야 한다.
•   “이 법칙이 사실이라면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나?“라는 식의 접근은 논리적 오류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3. 비효율적인 행동을 피하라

    •    실질적인 성과 없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척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   불필요한 절차나 형식적 논의에 집착하기보다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론: 검은 고양이는 정말 있는가?

    검은 고양이 비유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으려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비논리적인 탐색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어두운 방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는 행위”를 하게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방에 정말 고양이가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불필요한 탐색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명확한 근거와 논리를 바탕으로 사고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검은 고양이를 찾는 대신, 환한 곳에서 확실한 증거를 쫓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