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화를 싫어한다.
그 사실에 대해서는 특별히 숨길 생각도 없고, 부끄러워할 생각도 없다. 그저 평범한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다. 아마도 이 세상에는 나처럼 전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꽤 많을 것이다. 특히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 중에는. 우리는 컴퓨터와 대화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사람과의 대화는 때때로 불편하게 느껴진다. 코드는 명확하고 논리적이지만, 사람의 말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도 전화가 울렸다. 오후 세 시 십오 분쯤이었을까. 나는 모니터 앞에 앉아 새로운 알고리즘을 구상하고 있었다. 두 시간 동안 완전히 몰입한 상태였다.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마치 깊은 바닷속에서 갑자기 수면 위로 끌어올려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무시했을 테지만, 그날은 중요한 클라이언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내 목소리는 항상 전화 속에서는 낯설게 들린다. 마치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 쓰고 있는 것처럼.
“안녕하세요, ○○기업의 △△입니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아주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마치 오래된 재즈 바에서 들리는 색소폰 소리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전화도 아니었다.
전화의 문제점은 바로 그것이다. 상대방의 표정을 볼 수 없다는 것. 오직 목소리만으로 상대방의 의도나 감정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 프로그래밍에서라면 나는 디버거를 사용할 수 있다. 코드의 모든 상태를 확인하고, 문제가 발생한 정확한 지점을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전화 통화에는 디버거가 없다. 그저 내 감각에 의존해야 할 뿐이다.
코드를 작성할 때는 시간을 들여 생각할 수 있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 하지만 전화 통화에서는 그럴 수 없다. 한 번 말한 것은 되돌릴 수 없다. 마치 커밋 후에 푸시 버튼을 눌러버린 것과 같다.
아주 오래 전, 나는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던 적이 있다. 세 번이나 번호를 눌렀다가 바로 끊어버렸다. 네 번째 시도에서 겨우 통화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그리고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의 “여보세요?”라는 말만 세 번 들었을 뿐이다.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 소프트웨어의 무한 루프처럼, 나의 뇌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더 선호한다. 글로 쓰면 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있다. 적절한 단어를 선택할 시간이 있다. 마치 코드를 작성하듯이, 하나하나 정확하게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내 전화 공포증은 버그를 발견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내가 작성한 코드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들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 혹은 내가 작성한 함수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반환할 때의 당혹감. 마치 빈 우물 속에 돌을 던지고, 그 돌이 바닥에 닿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과 같은 불안감.
“○○님, 계십니까?”
전화 속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는 잠시 생각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네, 있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 이야기는 항상 쉽다. 정해진 주제, 정해진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잘 정의된 함수처럼. 입력과 출력이 명확하다. 하지만 그 외의 전화는 항상 어렵다. 특히 오랜만에 연락하는 친구나 가족과의 전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지 항상 헷갈린다. 그것은 마치 문서화되지 않은 API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전화 공포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나는 그것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전화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필요할 때는 사용한다. 마치 좋아하지 않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할 때처럼,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때로는 그런 불편함이 프로그래밍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불편함은 새로운 해결책을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로그래머에게 있어서 새로운 해결책이란 소중한 자산이다.
어쩌면 나는 언젠가 전화 공포증을 위한 앱을 만들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이 대신 전화를 받고, 중요한 내용만 텍스트로 정리해주는 그런 앱. 그렇게 되면 나 같은 사람들도 조금은 편안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전화가 울린다.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수화기를 든다. 그리고 또 다른 코드가 시작된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