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창문 너머로 햇살이 쏟아지는데, 나는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다. 시계는 벌써 열한 시.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과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마음이 줄다리기를 한다. 그저 눈을 감고 세상을 잊고 싶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다.
침대에서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집는다. 알림이 수십 개. 답장해야 할 메시지들, 확인해야 할 이메일들, 마감 기한이 다가오는 일들… 화면을 보다가 그대로 던져버린다. 오늘만큼은, 아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어제까지만 해도 의욕이 넘쳤는데. 아침에 일어나 운동하고, 일도 열심히 하고, 저녁엔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만 남아 나를 짓누른다.
천장의 작은 균열을 바라본다. 저 균열은 언제부터 저기 있었을까? 지난번에 눈치챘어야 했는데. 어쩌면 나도 저렇게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이미 금이 가 있는 건 아닐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커튼을 살랑거리게 한다. 저 바람은 어디서 왔을까? 어쩌면 누군가의 한숨일지도 모른다. 나와 같은 기분으로 오늘을 보내는 사람의 한숨.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담긴 숨결.
유리잔에 남아있는 물을 바라본다. 반쯤 차 있어? 아니면 반쯤 비어 있어? 물음표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 마음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텅 비어 있는 걸까, 아니면 뭔가로 가득 차 있는 걸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사실은 너무 많은 것들을 동시에 느끼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침대 옆 테이블 위에는 읽다 만 책들이 쌓여있다. 며칠 전만 해도 그토록 재미있게 읽었던 책인데, 지금은 손이 가지 않는다. 단어 하나를 읽는 것조차 거대한 산을 오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창밖을 내다본다. 사람들은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각자의 속도로 움직인다. 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처럼 무기력함에 빠져있는 사람은 없을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걷고 있지만, 속으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라고 외치고 있는 사람은 없을까?
이런 날들이 있다. 그냥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날. 열정도, 의욕도, 꿈도 잠시 접어두고 그저 존재하기만 하고 싶은 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선택처럼 느껴지는 날.
머릿속에서는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끊임없이 재생된다. 하지만 몸은 그 어떤 움직임도 거부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밀려온다. 이 순간만큼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위안이 된다.
시계는 여전히 똑딱거린다. 세상은 여전히 돌아간다. 나만 멈춰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어쩌면 이 멈춤도 필요한 시간일지 모른다. 무언가를 쉬었다 가기 위한,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 시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도 결국엔 지나가겠지.
손가락 끝으로 이불의 질감을 느낀다. 부드럽다. 따뜻하다. 안전하다. 이 작은 공간, 이 순간이 나에게 주는 안식.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오히려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이제는 침대 끝자락에 닿아 있다. 시간이 흘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흘려보낸 시간. 그래도 괜찮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필요한 일일 때가 있으니까.
눈을 감는다. 깊은 숨을 들이마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함께, 오늘 하루를 그냥 보내기로 한다.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오늘이 있어야, 무언가를 하고 싶은 내일이 올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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