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어른들은 늘 말씀하셨다.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그 말을 믿고 우리는 밤새워 공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약속은 희미해져만 간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다리 걷어차기. 자신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후, 뒤따라오는 이들이 같은 방법으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위를 뜻한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현대 한국 사회의 모습을 날카롭게 투영하고 있다.
며칠 전, 한 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다가 길 건너편의 학원가를 보게 되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 불이 환하게 켜진 학원의 창문들. 그 속에서 미래를 꿈꾸며 공부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들은 분명 누군가의 말을 믿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노력이 미래를 바꾼다”라는.
하지만 이 땅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현실은 어떠한가?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은 이제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 신기루가 되어버렸다.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고,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졌다. 취업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들어간다 해도 고용의 안정성은 보장받기 어렵다.
더 뼈아픈 현실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시대적 흐름이 아니라, 앞서 기회를 얻은 세대들의 ‘사다리 걷어차기’의 결과라는 점이다. 부동산을 여러 채 소유한 이들은 집값 하락을 우려해 규제 완화를 외치고,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한다. 이미 안정된 직장에 자리 잡은 이들은 신규 채용보다 기존 직원의 복지 향상에 더 목소리를 높인다.
지난주, 오랜 친구를 만났다. 대기업에 다니는 그는 최근 회사의 채용 축소 방침에 대해 이야기했다. “회사가 어렵다고 하더라고. 근데 사실 우리 부서만 해도 일은 넘쳐나는데 인력은 늘리지 않아. 기존 직원들의 연봉을 올려주는 대신 신규 채용을 줄이는 거지.” 그의 말에서 나는 또 다른 사다리 걷어차기를 발견했다.
세대 간 갈등은 점점 깊어만 간다. 기성세대는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가 기회를 독점했다”고 반박한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일 테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갈등이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 한 노인분이 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이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소리쳤다. 그 젊은이가 야간근무를 마치고 피곤에 지친 모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차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두 세대의 충돌이 그 좁은 공간에 응축되어 있었다.
사다리를 걷어차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없다. 선배 세대가 후배 세대의 기회를 가로막으면, 결국 그 사회 전체의 활력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는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된다. 청년들의 좌절은 저출산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고령화 사회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쉽게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시작점은 명확하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다. 각 세대가 서로의 입장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어떤 정책적 해결책도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어제 저녁, TV에서 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젊은 창업자와 은퇴한 베테랑 직장인이 함께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내용이었다. 젊은이의 창의성과 노인의 경험이 만나 시너지를 발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서로가 가진 것을 나누고 협력할 때,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는 메시지였다.
사다리는 걷어차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고 나누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올라갈 수 있도록 튼튼하고 넓은 사다리를 함께 만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회적 연대가 아닐까? 한 사람이 혼자 올라간 높이보다, 모두가 함께 올라간 높이가 더 의미 있는 법이다.
오늘도 어제처럼 밤은 깊어간다. 학원가의 불빛은 여전히 밝고, 젊은이들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불태운다. 그들의 꿈이 사다리 걷어차기로 인해 좌절되지 않기를, 그들이 올라간 후에는 더 튼튼한 사다리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건네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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