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시애틀의 밤은 비로 젖어 있었다. 팀 패터슨은 작은 아파트의 책상에 앉아 PDP-11 미니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화면엔 녹색 글자들이 깜빡였고, 방 안엔 커피 냄새와 전자기기의 윙윙거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그는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츠(SCP)라는 작은 회사에서 일하며, 취미 삼아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었다. 이름은 QDOS. ‘Quick and Dirty Operating System’—빠르고 지저분한 운영체제. 이름처럼 단순했지만, 그의 손끝에서 점점 생명을 얻고 있었다.
“이걸로 86-DOS라고 부르면 어떨까?” 팀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인텔 8086 프로세서를 겨냥한 이 시스템은 복잡한 메인프레임이 아니라, 개인이 쓸 수 있는 작은 컴퓨터를 위한 것이었다. 그는 대기업의 거대한 소프트웨어가 아닌,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꿈꿨다.
같은 시각, 시애틀에서 멀지 않은 벨뷰의 애플비 애비뉴. 빌 게이츠는 폴 앨런과 함께 허름한 사무실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IBM이라는 거물이 그들에게 연락을 해왔다. “PC 프로젝트에 운영체제가 필요해요. 할 수 있겠소?” IBM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빌은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준비돼 있어요.” 사실 준비된 건 없었다. 그들의 회사는 BASIC 언어로 돈을 벌고 있었지만, 운영체제는 손도 안 댄 분야였다.
“빌, 우리 운영체제 없잖아.” 폴이 전화를 끊자마자 말했다. 그의 눈엔 불안이 묻어났다.
“그러니까 찾아야지.” 빌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책상 위에 흩어진 서류를 뒤지며 말했다.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츠에 뭔가 있다던데. 팀 패터슨인가 하는 녀석이 만든 거.”
며칠 뒤, 빌과 폴은 팀을 만났다. 비가 내리는 카페에서 팀은 QDOS에 대해 설명했다. “간단해요. 파일 관리하고, 프로그램 돌리고. 화려하진 않지만 쓸모 있죠.” 빌은 그의 말을 들으며 눈을 빛냈다. “이걸 사겠습니다. 얼마면 됩니까?” 팀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5만 달러면 어때요?” 빌은 속으로 웃었다. IBM과의 계약이 성사되면 그보다 훨씬 큰 돈이 굴러들어올 터였다.
1981년 여름, 애플비 애비뉴의 사무실은 전쟁터가 됐다. 빌은 팀의 QDOS를 들여와 다듬기 시작했다. 이름도 바꿨다. MS-DOS. 마이크로소프트 디스크 운영체제. 코드 몇 줄을 고치고, IBM의 요구에 맞춰 기능을 추가했다. “이건 단순해야 해. 누구나 쓸 수 있을 정도로,” 빌은 팀원들에게 다그쳤다. 밤낮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그들은 MS-DOS 1.0을 완성했다.
IBM PC가 세상에 나왔다. 1981년 8월 12일, 회색 상자와 함께 MS-DOS가 탑재된 컴퓨터가 상점에 깔렸다. 첫날은 조용했지만,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이거 싸고 쓸만하네,” 사람들이 말했다. MS-DOS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래픽도, 마우스도 없었다. 하지만 단순함이 힘을 발휘했다. 프로그래머들은 그 위에 소프트웨어를 얹었고, 회사들은 문서 작업에 썼다.
팀은 어느 날 TV에서 IBM PC 광고를 봤다. 화면엔 그의 QDOS가 뿌리로 자리 잡은 MS-DOS가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저걸 시작했는데…” 그는 씁쓸히 웃었다. 5만 달러는 적은 돈이 아니었지만, 빌 게이츠가 그걸로 얻게 될 부는 상상 이상이었다.
빌은 사무실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비는 그쳤고, 시애틀의 하늘은 맑았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그는 중얼거렸다. MS-DOS는 단순한 도구였지만, 그 도구가 세상을 컴퓨터 앞으로 끌고 왔다. 비의 밤에 시작된 작은 코드는 이제 거대한 제국의 첫걸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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