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30분, 나는 언제나처럼 알람 소리가 울리기 5분 전에 눈을 떴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회색빛 구름으로 가득했다. 비가 올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내 안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라디오에서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 음악이 만들어내는 푸른빛 공간 속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갔다. 트럼펫 소리가 내 의식을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이상하지,”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음악은 어떻게 이렇게 쉽게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갈 수 있을까.”
창밖으로 이제 정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히는 소리는 마치 누군가가 아주 작은 손가락으로 창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잊혀진 기억들이 다시 돌아오려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나는 열다섯 살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도 이런 비 오는 날이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던 날. 그날의 비 냄새와 책 냄새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이상하게도 첫사랑의 기억도 그날의 비와 함께 묶여있다. 그녀의 이름은… 아니,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이 내게 남긴 흔적이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쓴맛이 혀끝에 남았다. 인생도 이런 맛이 아닐까. 처음에는 쓰지만, 천천히 맛보면 그 안에 복잡하고 미묘한 풍미가 있다. 나는 또 다른 모금을 위해 컵을 들어올렸다.
책상 위에는 어제 밤늦게까지 읽다 만 카프카의 ‘변신’이 놓여 있었다. 그레고르가 거대한 벌레로 변한 이야기. 때로는 나도 그런 기분이 든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러나 카프카와 달리, 나의 변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변화다.
“변화란 무엇일까,” 나는 생각했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우리는 그것을 같은 강이라고 부른다. 내가 열다섯 살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같은 의식의 흐름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창밖의 비는 더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나는 문득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비 오는 날이면 항상 같은 말씀을 하셨다.
“비는 하늘의 선물이야.”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비는 모든 것을 씻어내고,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한다. 의식의 흐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들이 비처럼 내리고, 그것들이 모여 강을 이루고, 결국 바다로 흘러간다.
시계는 이제 7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 서서 잠시 더 비를 바라보았다. 길 건너편에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처마 밑으로 몸을 숨겼다. 그 고양이의 눈빛이 특별히 슬퍼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고양이에게는 비가 그저 비일 뿐, 어떤 은유나 상징이 아닌 것이리라.
“단순함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생각했다.
커피잔을 싱크대에 내려놓으며, 나는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일상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어제와 오늘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어제의 내가 아니듯이, 오늘의 나도 내일이면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그것이 의식의 흐름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변화는 두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본질이라는 것을.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도시의 구름은 내면의 비를 부르고, 그 비는 다시 의식의 강을 채운다. 그리고 그 강은 끊임없이 흐른다, 어디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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