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창가에서

창 밖으로 걸어가는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에 젖어든다. 봄날의 나른한 오후, 이 한적한 카페의 창가에 앉아 나는 무심코 바깥세상을 관찰하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내 테이블 위에 부드럽게 내리쬐고, 풍부한 커피 향이 코끝을 간질이는 순간이었다.

그때 그녀가 나타났다.

살랑이는 봄바람에 그녀의 연보라색 원피스 자락이 춤을 추듯 나풀거렸다. 어깨까지 살포시 내려앉은 밤색 머리카락은 햇살에 반사되어 금빛으로 빛났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마치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느긋함이 있었다. 조급함도, 서두름도 없이 오직 자신만의 리듬으로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한 편의 시를 보는 듯했다.

한 손에는 작은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아마도 근처 꽃집에서 막 산 것 같은 들꽃 다발이었을까. 연분홍색과 연보라색이 섞인 꽃들이 그녀의 원피스와 묘하게 어울렸다. 다른 한 손으로는 때때로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모습이 무척이나 여성스러웠다.

그녀의 옆모습은 또 얼마나 인상적이었던가. 조금은 높은 콧대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입술, 그리고 긴 속눈썹 아래 빛나는 눈동자. 그녀의 표정에는 어딘가 가볍게 웃고 있는 듯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마치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미소 짓는 모나리자처럼.

그녀가 카페 앞을 지나갈 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유리창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우리의 시선이 일순간 마주쳤을까? 그 순간 나는 숨을 죽였다. 하지만 그녀는 잠시 후 미소를 띠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쩌면 그저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유리창을 바라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지면서, 나는 문득 그녀가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 꽃다발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일까, 아니면 그저 자신을 위한 작은 선물일까? 그녀의 발걸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인생은 참 이상하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면서도 대부분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특별한 이유 없이도 한 사람의 모습이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는 순간이 있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자리한 어떤 기억이나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계속해서 변한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 노부부가 천천히 걸어오고, 그들이 지나간 뒤에는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아이가 나타난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여전히 그녀에게 머물러 있다.

다시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니, 어느새 미지근해진 커피의 쓴맛이 혀끝에 맴돈다. 따스한 봄날의 햇살과 함께 나른함이 몸을 감싼다. 문득 나도 이 카페를 나서서 그녀가 걸었던 길을 따라가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다. 어쩌면 그 길의 끝에서 내가 찾고 있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이 가슴 한편에서 일렁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본다. 그녀는 이제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녀가 남긴 인상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마치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하게,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그리고 봄꽃처럼 아름답게.

우리의 삶은 이런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지나가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찰나의 연속. 봄날의 나른한 오후, 한적한 카페의 창가에서 나는 오늘도 그런 순간을 선물 받았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오늘 그녀는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을 봄날의 풍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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