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속삭임

1989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겨울은 축축했다. 귀도 반 로섬은 CWI 연구소의 작은 사무실에서 낡은 워크스테이션을 켰다. 창밖엔 운하를 따라 안개가 흘렀고, 그의 손엔 커피잔이 들려 있었다. “프로그래밍은 더 쉬워야 해,” 그는 중얼거렸다. ABC라는 언어를 다뤘던 그는, 그 잠재력을 사랑했지만 한계에 부딪혔다. “너무 딱딱해. 더 유연한 게 필요해.”

12월, 크리스마스 휴가였다. 연구소는 조용했고, 귀도는 심심했다. “뭐라도 만들어볼까?” 그는 키보드를 잡았다. 새로운 언어를 구상했다. 단순하고, 읽기 쉽고, 재미있는 것. 이름은 고민 끝에 떠올랐다. 파이썬(Python)—그가 좋아하던 코미디 쇼 ‘몬티 파이튼’에서 따왔다. “코드는 진지할 필요 없어. 웃음이 있어도 돼,” 그는 웃었다.

귀도는 코드를 썼다. 들여쓰기로 구조를 잡고, 복잡한 문법을 던졌다. “C는 너무 번거로워. 난 사람이 읽기 좋은 걸 원해.” 며칠 만에 첫 버전이 나왔다. 그는 동료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새 언어를 만들었어요. 한번 봐주세요.” 반응은 미지근했다. “ABC랑 뭐가 달라?” 하지만 귀도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건 내 취미야. 내가 쓰고 싶어서 만든 거야.”

1991년 2월, 파이썬 0.9.0이 공개됐다. 뉴스그룹에 올리자, 소문이 퍼졌다. “이거 간단하네!” “코드를 읽는 게 즐거워!” 개발자들이 모여들었다. 귀도는 놀랐다. “내가 만든 뱀이 이렇게 커질 줄이야.” 그는 오픈소스로 풀었다. “누구나 고쳐도 돼. 같이 키우자.”

시간이 흘렀다. 1994년, 파이썬 1.0이 나왔다. 람다, 모듈—기능이 쌓였다. 암스테르담의 운하 옆 카페에서 귀도는 맥주를 마시며 미소 지었다. “이건 단순한 도구가 아니야. 사람을 해방시키는 거야.” 하지만 갈등도 있었다. “너무 느려!”라는 비판이 나왔다. 귀도는 어깨를 으쓱했다. “속도보다 명확함이 중요해.”

2000년, 파이썬 2.0이 나왔다. 리스트 컴프리헨션, 가비지 컬렉션—뱀은 더 강해졌다. 구글이, 유튜브가 파이썬을 품었다. 귀도는 미국으로 옮겼다. 2005년, 구글에 합류하며 그는 말했다. “내 뱀이 세상을 돕고 있어.” 2008년, 파이썬 3.0은 과거를 끊었다. “미래로 가야 해,” 그는 단호했다.

2018년, 귀도는 리더 자리를 내려놓았다. “난 왕이 아니야. 이건 이제 모두의 거야.” 2023년, 암스테르담을 다시 찾은 그는 운하를 걸었다. 파이썬 3.11이 세상에서 뛰고 있었다. “내가 심은 씨앗이 이렇게 자랄 줄이야,” 그는 미소 지었다. 창밖 안개 속, 뱀의 속삭임은 전 세계로 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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