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점점 투명해진다.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들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는 동작, 출근길에 마주치는 건물들, 손에 쥐는 스마트폰까지. 모든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우리는 그것을 ‘보지 않고’ 지나친다. 이런 상황에서 ‘낯설게 하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선을 선물한다.
러시아 형식주의자 쉬클로프스키는 일상에 대한 자동화된 인식을 타파하기 위해 ‘낯설게 하기(остранение)’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예술의 핵심 기능이 바로 이것이라고 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어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것.
음악에서는 어떨까?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생각해보자. 피아니스트가 무대에 앉아 한 음도 연주하지 않고 4분 33초 동안 침묵하는 이 작품은 우리에게 ‘침묵’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콘서트홀의 기침 소리, 의자 삐걱거림, 에어컨 소리까지 모두 음악이 된다. 평소엔 무시되던 소리들이 갑자기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다.
건축에서는 프랭크 게리의 작품들이 일상적 공간 개념을 전복시킨다.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전통적인 직선과 수직 구조에서 벗어나 마치 금속 파도가 굳어버린 듯한 형태로 건축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흔든다. 일상적 건축물과의 단절을 통해 우리는 ‘건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진에서는 앙드레 케르테스가 일상의 사물을 기울이거나 왜곡된 각도에서 촬영함으로써 평범한 풍경을 초현실적으로 변형시켰다. 그의 ‘뒤틀린 포크’나 ‘멜랑콜리’와 같은 작품은 우리가 일상에서 수천 번 봤던 사물들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게 만든다.
미술에서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단순한 파이프 그림 아래 역설적인 문구를 배치함으로써 이미지와 실재, 재현과 대상 사이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자동화된 인식을 흔든다. 그림 속 파이프는 정말로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의 이미지일 뿐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갑자기 충격적인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종종 ‘낯설게 하기’의 순간을 경험한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의 골목길이 어릴 때보다 좁게 느껴질 때, 혹은 매일 지나치던 거리의 한 구석에서 처음 보는 작은 꽃을 발견했을 때. 그 순간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세상을 새롭게 본다.
어쩌면 예술의 핵심은 바로 이 ‘낯설게 하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일상의 자동화된 인식에서 벗어나 다시 세상을 ‘보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것은 거창한 예술 작품뿐 아니라 일상 속 작은 전환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매일 같은 길로 출근하던 사람이 하루는 다른 길을 택하는 것만으로도, 익숙한 세상은 다시 낯설고 생생해질 수 있다.
낯설게 보기는 결국 깨어있는 삶의 방식이다. 자동화된 인식에서 벗어나 다시 세상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 예술은 그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안내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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