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창문 틈으로 스며들어 눈꺼풀을 간질이는 순간, 시계는 이미 아홉 시를 가리키고 있다. 평일이었다면 벌써 세상이 다 끝난 듯한 조급함에 시달렸겠지만, 오늘은 휴일.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조금 더, 그래 조금만 더 누워있기로 한다.
천장에 그려진 희미한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일렁인다. 어제 읽다 만 소설책이 침대 옆에 놓여있고, 핸드폰에는 읽지 않은 메시지들이 쌓여있겠지만 굳이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 느릿한 흐름 속에 몸을 맡긴다.
기지개를 켜니 등허리가 끈적하게 늘어진다. 이제 슬슬 일어나야 할까. 아니, 조금만 더. 창밖으로 들리는 새소리가 달콤한 나른함을 더해준다. 행인의 발걸음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세상은 이미 깨어났지만, 나의 세계는 아직 반쯤 꿈속에 잠겨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발바닥이 차가운 바닥에 닿는다. 따뜻한 양말을 신을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맨발로 부엌으로 향한다. 커피 한 잔이 생각나는 순간. 분쇄된 원두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물이 끓는 동안 창가에 서서 바깥을 내다본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며 아스팔트 위에 그림자 놀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커피 잔을 들고 소파에 몸을 묻는다. 음악을 틀까, 책을 읽을까,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선택의 자유로움이 오히려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게 한다. 결국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쓰면서도 달콤한 이 맛, 혀끝에 남는 여운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머릿속에 어제의 일들이 조각조각 떠오른다. 미처 끝내지 못한 일들, 내일로 미뤄둔 약속들. 하지만 오늘은 그 모든 것들을 잠시 내려놓는 날. 시간은 마치 꿀처럼 느릿하게 흐른다.
문득 배고픔이 느껴진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어제 남은 빵과 잼이 눈에 들어온다. 토스터에 빵을 넣고 기다리는 시간마저 느긋하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빵이 튀어오르고, 버터가 녹아내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작은 행복이 이런 순간에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창가에 앉아 늦은 아침을 먹으며 생각한다. 점심은 뭘 먹을까, 오후에는 무얼 할까. 계획 없는 하루가 주는 자유로움. 그래, 그냥 흘러가는 대로 놔두자. 시간이 흐르고 햇살이 점점 더 짙어질 때, 어쩌면 산책을 나갈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이 자리에서 온종일 게으름을 피울지도.
나른한 휴일의 오전, 시간은 마치 멈춘 듯 천천히 흐르고, 그 속에서 일상의 작은 행복들이 반짝인다. 이런 순간들을 위해 우리는 바쁜 나날을 견디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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