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징후는 미묘했다. 클라이언트 미팅에서 요구사항이 “조금 변경”된다는 말이었지. PM의 얼굴에 스친 불안한 표정, 새벽 2시에 울리는 카카오톡 알림, 커피 컵이 점점 더 커져가는 현상…
“범위가 조금 확장됐습니다. 추가 비용 없이 해결 가능하죠?”
3월이 되자 첫 번째 개발자가 사표를 냈다. 그는 떠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노트북을 반납하고 조용히 사라졌을 뿐.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4월, 기획 문서가 17번째 개정판을 맞이했다. 그때쯤 시스템 아키텍트는 머리카락이 절반쯤 빠져있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게 빠를 것 같아요.”
5월, 회의실은 이제 임시 숙소가 되었다. 개발팀장의 눈에는 핏발이 서고, 프로젝트 문서함은 종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휘어지기 시작했다.
“납기일은 절대 미룰 수 없습니다. 주말에 조금만 더 힘내봅시다.”
6월, 야근 수당 예산이 바닥났다. 대신 피자와 치킨이 공급됐다. 개발자들의 몸무게는 평균 7kg 증가했고, Git 커밋 메시지는 점점 더 욕설에 가까워졌다.
“이거 되는 거 맞아?”
“모르겠다. 그냥 돌리자.”
“제발 터지지만 말아라.”
7월, 클라이언트는 갑자기 새로운 담당자를 투입했다. 그는 이전 요구사항을 전혀 모른다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QA팀은 집단 우울증에 빠졌다.
8월, CEO는 “잠시 현금 흐름에 문제가 있다”며 급여일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회계팀의 표정은 이미 장례식장의 분위기였다.
9월, 클라이언트는 일정 지연에 대한 페널티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법무팀이 비상 소집됐고, 프로젝트 폴더는 갑자기 백업본이 여섯 개씩 생겨났다.
10월, 회사 주차장에는 중고차 매매상의 명함이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PM은 출근하지 않은 지 3일째. 그의 책상 서랍에서 수면제 빈 병이 발견됐다.
11월, 회사는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배는 이미 침몰하고 있었고, 구명보트는 부족했다.
12월, 사무실 전등이 하나둘 꺼져갔다.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프로젝트 서버는 마지막 숨을 내쉬듯 느려졌고, 클라이언트의 전화는 더 이상 받지 않았다.
새해 첫날, 사무실 문은 잠겨 있었다. 출입문에는 작은 종이 한 장.
“폐업 신고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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