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세상은 끝났다. 아니, 적어도 내가 알던 세상은 끝났다. 좀비 아포칼립스가 시작된 지 석 달째, 거리는 폐허가 되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숨을 곳을 찾아 필사적으로 헤맸다. 나 역시 낡은 배낭 하나에 의지하며 도시 외곽의 버려진 창고를 전전하고 있었다. 생존은 단순한 목표였다: 먹을 것을 찾고, 물을 구하고, 좀비를 피하라. 하지만 그날, 나는 예상치 못한 존재를 만났다. 이상형의 좀비를.
그날 아침, 나는 창고 근처의 슈퍼마켓 폐허로 향했다. 통조림 몇 캔을 찾을 요량이었다. 거리는 고요했고, 바람에 굴러다니는 플라스틱 병 소리만이 적막을 깼다. 슈퍼마켓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냄새—썩은 고기와 먼지 섞인 공기가 코를 찔렀다. 나는 조심스럽게 통로를 지나며 바닥에 흩어진 물건들을 살폈다. 그러다 문득,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좀비였다.
나는 즉시 몸을 숙이고 선반 뒤에 숨었다. 숨을 죽이고 소리가 나는 방향을 살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신음은 위협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궁금한 듯한, 하이톤이 많이 섞인 소리였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겼다. 나는 살짝 고개를 내밀어 통로 끝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좀비였다. 분명히 좀비였다. 창백한 피부, 흐릿한 눈동자, 그리고 어설프게 찢어진 옷은 좀비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의 머리에는 초록색 리본이 묶여 있었고, 한쪽 손에는 낡은 곰 인형을 꼭 쥐고 있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걷다가 선반에 걸려 넘어졌고, 그러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곰 인형을 내려다보며 작게 “으으…” 하고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던지, 나는 순간 내가 좀비 아포칼립스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그녀를 관찰했다. 그녀는 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녀는 곰 인형을 들어 올리더니 마치 대화를 나누듯 중얼거렸다. “으… 곰이… 배고프?”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어딘가 순수함이 묻어났다.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을 틀어막았다. 이게 대체 뭐지? 좀비가 귀여울 수 있나?
용기를 내어 선반 뒤에서 나왔다. 그녀는 고개를 들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흐릿한 눈이 나와 마주쳤지만, 공격적인 기색은 없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어… 안녕?” 내 목소리는 떨렸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곰 인형을 내게 내밀었다. “으… 친구?”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녀는 다른 좀비들과 달랐다. 그녀는 여전히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살아 있을 때의 감정을, 혹은 누군가와의 연결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 옆에 앉았다. “그래, 친구.” 나는 그녀의 곰 인형을 받아들며 말했다.
그날, 나는 그녀와 몇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곰 인형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 나는 그녀가 살아 있을 때 어떤 사람이었을지 상상했다. 아마도 밝고, 따뜻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초록색 리본과 곰 인형은 그녀가 잃고 싶지 않은 과거의 조각 같았다.
해가 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떠나야 했다. 생존은 여전히 내 첫 번째 목표였고, 그녀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통조림 하나를 건넸다. “이거… 곰이 먹어.” 그녀는 통조림을 받아들고 다시 “으으…” 하며 미소를 짓는 듯했다. 나는 그녀를 뒤로하고 창고로 돌아왔다. 마음 한구석이 무겁고, 동시에 따뜻했다.
그 후로 나는 그녀를 다시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만남은 내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변한 세상에서도, 그녀는 내게 생존 이상의 무언가를 가르쳐 주었다. 어쩌면, 우리가 정말로 지켜야 하는 것은 그런 작은 순간들, 그리고 그 안의 인간다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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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형의 좀비를 만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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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아침 6시 30분, 나는 언제나처럼 알람 소리가 울리기 5분 전에 눈을 떴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회색빛 구름으로 가득했다. 비가 올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내 안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라디오에서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 음악이 만들어내는 푸른빛 공간 속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갔다. 트럼펫 소리가 내 의식을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이상하지,”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음악은 어떻게 이렇게 쉽게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갈 수 있을까.”
창밖으로 이제 정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히는 소리는 마치 누군가가 아주 작은 손가락으로 창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잊혀진 기억들이 다시 돌아오려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나는 열다섯 살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도 이런 비 오는 날이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던 날. 그날의 비 냄새와 책 냄새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이상하게도 첫사랑의 기억도 그날의 비와 함께 묶여있다. 그녀의 이름은… 아니,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이 내게 남긴 흔적이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쓴맛이 혀끝에 남았다. 인생도 이런 맛이 아닐까. 처음에는 쓰지만, 천천히 맛보면 그 안에 복잡하고 미묘한 풍미가 있다. 나는 또 다른 모금을 위해 컵을 들어올렸다.
책상 위에는 어제 밤늦게까지 읽다 만 카프카의 ‘변신’이 놓여 있었다. 그레고르가 거대한 벌레로 변한 이야기. 때로는 나도 그런 기분이 든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러나 카프카와 달리, 나의 변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변화다.
“변화란 무엇일까,” 나는 생각했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우리는 그것을 같은 강이라고 부른다. 내가 열다섯 살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같은 의식의 흐름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창밖의 비는 더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나는 문득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비 오는 날이면 항상 같은 말씀을 하셨다.
“비는 하늘의 선물이야.”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비는 모든 것을 씻어내고,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한다. 의식의 흐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들이 비처럼 내리고, 그것들이 모여 강을 이루고, 결국 바다로 흘러간다.
시계는 이제 7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 서서 잠시 더 비를 바라보았다. 길 건너편에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처마 밑으로 몸을 숨겼다. 그 고양이의 눈빛이 특별히 슬퍼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고양이에게는 비가 그저 비일 뿐, 어떤 은유나 상징이 아닌 것이리라.
“단순함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생각했다.
커피잔을 싱크대에 내려놓으며, 나는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일상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어제와 오늘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어제의 내가 아니듯이, 오늘의 나도 내일이면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그것이 의식의 흐름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변화는 두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본질이라는 것을.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도시의 구름은 내면의 비를 부르고, 그 비는 다시 의식의 강을 채운다. 그리고 그 강은 끊임없이 흐른다, 어디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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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하기: 일상과 예술 속 새로운 시선
매일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점점 투명해진다.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들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는 동작, 출근길에 마주치는 건물들, 손에 쥐는 스마트폰까지. 모든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우리는 그것을 ‘보지 않고’ 지나친다. 이런 상황에서 ‘낯설게 하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선을 선물한다.
러시아 형식주의자 쉬클로프스키는 일상에 대한 자동화된 인식을 타파하기 위해 ‘낯설게 하기(остранение)’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예술의 핵심 기능이 바로 이것이라고 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어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것.
음악에서는 어떨까?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생각해보자. 피아니스트가 무대에 앉아 한 음도 연주하지 않고 4분 33초 동안 침묵하는 이 작품은 우리에게 ‘침묵’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콘서트홀의 기침 소리, 의자 삐걱거림, 에어컨 소리까지 모두 음악이 된다. 평소엔 무시되던 소리들이 갑자기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다.
건축에서는 프랭크 게리의 작품들이 일상적 공간 개념을 전복시킨다.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전통적인 직선과 수직 구조에서 벗어나 마치 금속 파도가 굳어버린 듯한 형태로 건축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흔든다. 일상적 건축물과의 단절을 통해 우리는 ‘건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진에서는 앙드레 케르테스가 일상의 사물을 기울이거나 왜곡된 각도에서 촬영함으로써 평범한 풍경을 초현실적으로 변형시켰다. 그의 ‘뒤틀린 포크’나 ‘멜랑콜리’와 같은 작품은 우리가 일상에서 수천 번 봤던 사물들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게 만든다.
미술에서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단순한 파이프 그림 아래 역설적인 문구를 배치함으로써 이미지와 실재, 재현과 대상 사이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자동화된 인식을 흔든다. 그림 속 파이프는 정말로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의 이미지일 뿐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갑자기 충격적인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종종 ‘낯설게 하기’의 순간을 경험한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의 골목길이 어릴 때보다 좁게 느껴질 때, 혹은 매일 지나치던 거리의 한 구석에서 처음 보는 작은 꽃을 발견했을 때. 그 순간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세상을 새롭게 본다.
어쩌면 예술의 핵심은 바로 이 ‘낯설게 하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일상의 자동화된 인식에서 벗어나 다시 세상을 ‘보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것은 거창한 예술 작품뿐 아니라 일상 속 작은 전환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매일 같은 길로 출근하던 사람이 하루는 다른 길을 택하는 것만으로도, 익숙한 세상은 다시 낯설고 생생해질 수 있다.
낯설게 보기는 결국 깨어있는 삶의 방식이다. 자동화된 인식에서 벗어나 다시 세상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 예술은 그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안내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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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를 걷어차는 사회
어린 시절, 어른들은 늘 말씀하셨다.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그 말을 믿고 우리는 밤새워 공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약속은 희미해져만 간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다리 걷어차기. 자신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후, 뒤따라오는 이들이 같은 방법으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위를 뜻한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현대 한국 사회의 모습을 날카롭게 투영하고 있다.
며칠 전, 한 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다가 길 건너편의 학원가를 보게 되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 불이 환하게 켜진 학원의 창문들. 그 속에서 미래를 꿈꾸며 공부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들은 분명 누군가의 말을 믿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노력이 미래를 바꾼다”라는.
하지만 이 땅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현실은 어떠한가?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은 이제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 신기루가 되어버렸다.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고,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졌다. 취업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들어간다 해도 고용의 안정성은 보장받기 어렵다.
더 뼈아픈 현실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시대적 흐름이 아니라, 앞서 기회를 얻은 세대들의 ‘사다리 걷어차기’의 결과라는 점이다. 부동산을 여러 채 소유한 이들은 집값 하락을 우려해 규제 완화를 외치고,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한다. 이미 안정된 직장에 자리 잡은 이들은 신규 채용보다 기존 직원의 복지 향상에 더 목소리를 높인다.
지난주, 오랜 친구를 만났다. 대기업에 다니는 그는 최근 회사의 채용 축소 방침에 대해 이야기했다. “회사가 어렵다고 하더라고. 근데 사실 우리 부서만 해도 일은 넘쳐나는데 인력은 늘리지 않아. 기존 직원들의 연봉을 올려주는 대신 신규 채용을 줄이는 거지.” 그의 말에서 나는 또 다른 사다리 걷어차기를 발견했다.
세대 간 갈등은 점점 깊어만 간다. 기성세대는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가 기회를 독점했다”고 반박한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일 테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갈등이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 한 노인분이 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이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소리쳤다. 그 젊은이가 야간근무를 마치고 피곤에 지친 모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차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두 세대의 충돌이 그 좁은 공간에 응축되어 있었다.
사다리를 걷어차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없다. 선배 세대가 후배 세대의 기회를 가로막으면, 결국 그 사회 전체의 활력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는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된다. 청년들의 좌절은 저출산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고령화 사회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쉽게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시작점은 명확하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다. 각 세대가 서로의 입장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어떤 정책적 해결책도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어제 저녁, TV에서 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젊은 창업자와 은퇴한 베테랑 직장인이 함께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내용이었다. 젊은이의 창의성과 노인의 경험이 만나 시너지를 발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서로가 가진 것을 나누고 협력할 때,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는 메시지였다.
사다리는 걷어차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고 나누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올라갈 수 있도록 튼튼하고 넓은 사다리를 함께 만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회적 연대가 아닐까? 한 사람이 혼자 올라간 높이보다, 모두가 함께 올라간 높이가 더 의미 있는 법이다.
오늘도 어제처럼 밤은 깊어간다. 학원가의 불빛은 여전히 밝고, 젊은이들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불태운다. 그들의 꿈이 사다리 걷어차기로 인해 좌절되지 않기를, 그들이 올라간 후에는 더 튼튼한 사다리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건네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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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아래의 연결
2004년, 런던의 늦여름. 마크 셔틀워스는 작은 사무실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하늘은 맑았고, 그의 머릿속은 더 맑았다. 몇 년 전, 그는 우주로 날아간 남아프리카 출신의 첫 민간 우주인이었다. 지구를 떠난 그 경험은 그를 바꿨다. “세상은 하나로 연결될 수 있어,” 그는 생각했다. 이제 그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컴퓨터를 누구나 쓸 수 있게 만드는 것.
마크는 데비안 리눅스를 사랑했다. 자유롭고 강력했지만, 초보자에게는 너무 험난했다. “일반 사람들도 쉽게 쓸 수 있는 리눅스가 필요해.” 그는 책상에 앉아 노트에 아이디어를 적었다. 이름은 남아프리카의 철학에서 따왔다. 우분투(Ubuntu)—‘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뜻. “이건 기술이 아니라 사람에 관한 거야,” 그는 중얼거렸다.
그는 팀을 모았다. 전 세계에서 온 괴짜들—프랑스의 개발자, 인도의 해커, 미국의 디자이너. “6개월 안에 배포판을 만들어요. 무료로, 누구나 쓸 수 있게.” 마크의 선언에 팀은 놀랐다. “불가능해요,”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마크는 웃었다. “내가 우주에 갔던 걸 생각하면, 이건 쉬워.”
사무실은 곧 활기로 넘쳤다. 데비안을 뼈대로 삼아, 그들은 인터페이스를 다듬었다. GNOME을 얹고, 설치 과정을 단순화했다. “클릭 몇 번으로 끝나야 해,” 마크는 강조했다. 밤마다 커피와 피자 상자가 쌓였고, 코드가 쌓였다. 2004년 10월 20일, 우분투 4.10 ‘Warty Warthog’가 세상에 나왔다. 이름은 농담처럼 붙였다. “완벽하진 않지만, 시작이야.”
마크는 배포판을 무료로 공개했다. 심지어 CD를 우편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돈이 없어도 누구나 써야 해.” 전 세계에서 주문이 쏟아졌다. 남아프리카의 학생, 인도의 교사, 브라질의 프로그래머—우분투는 그들의 손에 닿았다. 포럼엔 감사의 글이 넘쳤다. “이게 리눅스라고?” “너무 쉬워!”
하지만 도전도 있었다. 데비안 커뮤니티는 우분투를 의심했다. “너무 상업적이야,” “자유를 팔아먹었어,”라는 비판이 나왔다. 마크는 고개를 저었다. “우린 자유를 더 많은 사람에게 주려는 거야.” 그는 캐노니컬(Canonical)이라는 회사를 세워 프로젝트를 뒷받침했다. 돈은 필요했다. 서버를 돌리고, 개발자를 먹여 살리려면.
시간이 흘렀다. 우분투는 진화했다. 6.06 LTS는 안정성을 자랑했고, 10.04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사랑받았다. 마크는 사무실에서 팀과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우리가 만든 건 운영체제가 아니야. 연결이야.” 그의 말대로였다. 우분투는 학교, 사무실, 심지어 클라우드까지 퍼졌다.
2011년, 유니티(Unity) 인터페이스를 도입하며 논란이 일었다. “너무 무거워!” 사용자들이 반발했다. 마크는 고민했다. “우리가 너무 앞서갔나?” 결국 유니티는 물러났고, GNOME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원하는 걸 들어야 해,” 그는 결론 내렸다.
2023년, 런던의 가을. 마크는 사무실 창밖을 보며 미소 지었다. 우분투 23.10 ‘Mantic Minotaur’가 막 나왔다. 수백만 명이 그것을 쓰고 있었다. 남아프리카의 한 마을에서, 아이가 우분투로 코딩을 배웠다. 마크는 우주에서 본 지구를 떠올렸다.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 그의 꿈은 태양 아래,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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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아워
해가 지기 전, 도시는 금빛으로 물들었다. 운전대를 꽉 쥐고 있던 나는 빨간색 신호에 맞춰 횡단보도 앞에 부드럽게 차를 세웠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길을 건너려고 기다리는 한 소녀였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황금빛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얼추 열여섯 정도로 보이는 그 소녀는 교복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하얀색 이어폰을 꽂은 채 리듬에 맞춰 살짝 몸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문득 나의 저 나잇대 시절이 떠올랐다. 나도 저렇게 음악에 빠져 세상을 잊곤 했었지. 그때는 미래가 무한히 넓게 펼쳐져 있는 것만 같았다. 모든 가능성이 내 앞에 놓여 있었고, 나는 그저 선택만 하면 됐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고, 소녀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녀의 걸음걸이에는 어떤 가벼움이 있었다. 아직 세상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지 못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가벼움.
나는 그녀가 길을 다 건널 때까지 눈으로 쫒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치 시간이 느려진 것 같았다. 황금빛 햇살 아래, 그녀의 실루엣이 점점 멀어져 갔다.
액셀러레이터를 밟기 전, 문득 내가 매일 지나치는 이 길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지나치는 우리는 서로 모르는 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 순간, 그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서로의 삶에 들어와 있다.
차를 다시 출발시키며, 내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맴돌았다. 저 소녀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그녀의 꿈은 무엇일까? 그녀의 이어폰에서는 어떤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을까?
도시의 황금빛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하늘은 점점 더 짙은 파란색으로 물들었고,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나는 창문을 조금 내리고 저녁 공기를 들이마셨다. 살짝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갑자기 내 앞에 펼쳐진 도로가 무한히 길게 느껴졌다.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모두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삶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달리다가, 때로는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 그리고 우연히 마주친 순간들에서 의미를 찾는 것.
오늘의 골든 아워는 이제 곧 끝나겠지만, 내일 또 다른 골든 아워가 찾아올 것이다. 그때는 또 어떤 순간이 내 기억에 남을까? 어떤 얼굴이, 어떤 장면이 내 마음을 움직일까?
차를 몰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미소 지었다. 때로는 가장 평범한 순간이 가장 특별한 기억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 횡단보도를 건너던 소녀의 모습은 내 마음 한구석에 작은 빛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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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것 없던 날의 특별한 기억
가끔은 특별할 것 없는 순간이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마치 뇌의 어딘가에 작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것처럼. 그것은 아마도 열아홉 살 여름이었을 것이다. 아니, 스물한 살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가 아직 대학생이었고, 세상의 복잡한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남천동의 작은 카페에 앉아 있었다. 나는 블랙커피를, 그녀는 레몬티를 마시고 있었다. 오후 3시 무렵이었고, 카페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빛이 테이블 위에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글쎄,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입고 있던 셔츠는 기억한다. 연한 파란색, 마치 5월의 하늘같은 색이었다.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재즈에 관한 것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우리가 읽은 책에 관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무의미한 일상에 관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대화가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앞으로 몸을 기울여 차를 마시려 할 때였다. 셔츠의 위쪽 단추 두 개가 풀려 있었고, 그 틈 사이로 그녀의 가슴이 살짝 보였다. 그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 단지 우연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시선을 돌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눈동자는 불가피하게 그곳으로 이끌렸다. 마치 블랙홀의 중력처럼, 저항할 수 없는 힘이었다.
그녀의 피부는 우유처럼 하얗고 부드러워 보였다. 검은색 브래지어 끈이 살짝 보였다. 나는 그 순간 우주의 비밀을 목격한 것 같은 감각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에로틱한 순간이면서도 동시에 묘하게 순수한 경험이었다.
“왜 그래?” 그녀가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갑자기 입이 말랐다. 물 한 잔을 들이켰다.
사실 그녀의 가슴을 본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건 단지 표면적인 사건이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것은 욕망이 아니라 경외감에 가까웠다. 인간의 몸이 가진 아름다움, 그리고 그 순간의 우연성이 만들어낸 마법 같은 찰나였다.
나는 그 후로도 여러 여자들을 만났고, 더 직접적이고 친밀한 경험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날 카페에서의 기억은 이상하게도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아직 세상에 대해 순수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그저 젊음의 감수성이 만들어낸 착각일지도 모른다.
종종 생각한다. 그녀도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그저 평범한 오후의 차 한 잔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내게는 시간이 멈춘 순간이었다.
인생은 이런 작은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저 지나가버릴 사소한 순간들. 하지만 때로는 그 사소한 순간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한다. 마치 오래된 재즈 레코드의 긁힌 부분처럼, 반복해서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 나는 다른 카페에서 비슷한 파란색 셔츠를 입은 여자를 보았다. 순간 그날의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환영이었다. 과거의 기억은 언제나 현재에 투영되지만, 결코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아마도 나는 더 당당하게 그녀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진심을 털어놓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앞으로만 나아간다. 마치 시계 바늘처럼.
가끔, 아주 가끔, 조용한 밤에 혼자 있을 때면 그날의 기억이 찾아온다. 연한 파란색 셔츠, 검은 브래지어 끈, 그리고 우연히 드러난 피부의 일부. 그것은 이제 현실이 아닌 꿈의 영역에 존재한다. 하지만 꿈도 때로는 현실보다 더 생생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 기억을 소중히 간직한다. 테이블 너머로 슬쩍 보였던 그녀의 가슴, 그리고 그 순간 느꼈던 경외감.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의도하지 않게 드러나는 아름다움의 순간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는 우리의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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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창가에서
창 밖으로 걸어가는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에 젖어든다. 봄날의 나른한 오후, 이 한적한 카페의 창가에 앉아 나는 무심코 바깥세상을 관찰하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내 테이블 위에 부드럽게 내리쬐고, 풍부한 커피 향이 코끝을 간질이는 순간이었다.
그때 그녀가 나타났다.
살랑이는 봄바람에 그녀의 연보라색 원피스 자락이 춤을 추듯 나풀거렸다. 어깨까지 살포시 내려앉은 밤색 머리카락은 햇살에 반사되어 금빛으로 빛났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마치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느긋함이 있었다. 조급함도, 서두름도 없이 오직 자신만의 리듬으로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한 편의 시를 보는 듯했다.
한 손에는 작은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아마도 근처 꽃집에서 막 산 것 같은 들꽃 다발이었을까. 연분홍색과 연보라색이 섞인 꽃들이 그녀의 원피스와 묘하게 어울렸다. 다른 한 손으로는 때때로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모습이 무척이나 여성스러웠다.
그녀의 옆모습은 또 얼마나 인상적이었던가. 조금은 높은 콧대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입술, 그리고 긴 속눈썹 아래 빛나는 눈동자. 그녀의 표정에는 어딘가 가볍게 웃고 있는 듯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마치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미소 짓는 모나리자처럼.
그녀가 카페 앞을 지나갈 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유리창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우리의 시선이 일순간 마주쳤을까? 그 순간 나는 숨을 죽였다. 하지만 그녀는 잠시 후 미소를 띠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쩌면 그저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유리창을 바라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지면서, 나는 문득 그녀가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 꽃다발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일까, 아니면 그저 자신을 위한 작은 선물일까? 그녀의 발걸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인생은 참 이상하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면서도 대부분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특별한 이유 없이도 한 사람의 모습이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는 순간이 있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자리한 어떤 기억이나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계속해서 변한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 노부부가 천천히 걸어오고, 그들이 지나간 뒤에는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아이가 나타난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여전히 그녀에게 머물러 있다.
다시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니, 어느새 미지근해진 커피의 쓴맛이 혀끝에 맴돈다. 따스한 봄날의 햇살과 함께 나른함이 몸을 감싼다. 문득 나도 이 카페를 나서서 그녀가 걸었던 길을 따라가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다. 어쩌면 그 길의 끝에서 내가 찾고 있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이 가슴 한편에서 일렁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본다. 그녀는 이제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녀가 남긴 인상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마치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하게,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그리고 봄꽃처럼 아름답게.
우리의 삶은 이런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지나가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찰나의 연속. 봄날의 나른한 오후, 한적한 카페의 창가에서 나는 오늘도 그런 순간을 선물 받았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오늘 그녀는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을 봄날의 풍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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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위의 불씨
1991년, 헬싱키의 겨울은 매서웠다. 리누스 토르발스는 대학 기숙사 방에서 낡은 386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창밖엔 눈이 쌓이고, 방 안엔 전자기기의 따뜻한 열기와 키보드 소리만이 가득했다. 스무 살의 리누스는 유닉스 책을 펼쳐놓고 코드를 짜고 있었다. 그가 사랑한 유닉스(Minix)는 강력했지만, 제약이 많았다. “내가 원하는 건 더 자유로운 거야,”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리누스는 몇 달 전부터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터미널 에뮬레이터로 시작한 코드는 점점 커졌다. 파일을 읽고, 프로세스를 관리하고, 디스크를 제어하는 기능이 하나씩 쌓였다. 그는 잠을 줄이고 커피를 늘리며 밤을 보냈다. “이건 그냥 취미일 뿐이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Minix 사용자 그룹에 글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386용 무료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어요. 그냥 재미로 하는 거지만, 관심 있으면 봐주세요.”
그는 파일을 올리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메일함은 터져 있었다. “코드 보내주세요!” “어떻게 돼요?” 전 세계의 프로그래머들이 반응했다. 리누스는 얼떨떨했다. “뭐야, 진짜로 관심 있는 거야?”이름은 고민 끝에 정했다. 리눅스(Linux). 자기 이름에서 따온 건 좀 쑥스러웠지만, 어쩐지 잘 어울렸다. 그는 소스 코드를 공개했다. “누구든 고치고 싶으면 고쳐도 돼요.” 그 결정은 폭풍을 일으켰다. 핀란드의 작은 방에서 시작된 코드는 인터넷을 타고 퍼졌다. 독일의 해커가 버그를 잡았고, 미국의 학생이 기능을 추가했다. 리누스는 메일을 읽으며 웃었다. “내가 만든 게 이렇게 커질 수가 있나?”
1992년, 리눅스는 점점 모양을 갖췄다. 하지만 문제도 생겼다. Minix의 창시자 앤드류 타넨바움이 반발했다. “리눅스는 구식이야. 설계가 엉망이야!” 온라인에서 논쟁이 붙었다. 리누스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반박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돼요. 중요한 건 사람들이 쓰고 싶어 한다는 거예요.” 그 말대로였다. 리눅스는 단순하고 자유로웠다. 누구나 뜯어보고 고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커뮤니티는 거대해졌다. 리누스는 기숙사를 떠나 작은 아파트로 옮겼지만, 여전히 혼자였다. 그는 코드를 리뷰하고, 패치를 적용하며 중심을 잡았다. “내가 다 할 필요는 없어. 다 같이 만드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어느 날, 누군가 턱시도를 입은 펭귄 이미지를 보냈다. “리눅스의 마스코트로 어때요?” 리누스는 피식 웃었다. 턱스(Tux)라는 이름이 붙었다.
1994년, 리눅스 1.0이 나왔다. 헬싱키의 눈 덮인 거리에서 리누스는 친구들과 맥주를 들었다. “이제 진짜 운영체제야,” 친구가 말했다. 리누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시작이야.” 그의 예감은 맞았다. 리눅스는 서버, 슈퍼컴퓨터, 심지어 안드로이드까지 뻗어나갔다. 얼음 위에서 피운 작은 불씨는 세상을 따뜻하게 덥혔다.
어느 겨울밤, 리누스는 창밖을 보며 미소 지었다. 화면엔 턱스가 깜빡이고, 메일함엔 여전히 전 세계의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내가 만든 게 아니야,” 그는 중얼거렸다. “우리 모두가 만든 거지.” 헬싱키의 추운 방에서 시작된 꿈은 이제 전 세계의 손끝에서 숨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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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의 시작
1989년, 스위스 제네바 근처의 CERN 연구소. 팀 버너스-리는 복도 끝 사무실에서 낡은 NeXT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론 알프스 산맥이 어렴풋이 보였고, 그의 책상엔 종이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서른넷의 팀은 물리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정보의 흐름에 푹 빠져 있었다. “이 데이터들은 서로 연결돼야 해,” 그는 중얼거렸다.
CERN은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모인 곳이었지만, 혼란이었다. 실험 데이터, 논문, 메모—모두 제각각 흩어져 있었다. 팀은 꿈꿨다. 모든 정보를 하나로 묶는 시스템을. 그는 몇 년 전부터 ‘ENQUIRE’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더 큰 걸 해야 해. 전 세계를 잇는 거야.”
어느 날, 그는 상사 로버트 카이야우에게 제안을 던졌다. “정보를 하이퍼텍스트로 연결하면 어떨까요?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요.” 로버트는 눈썹을 치켰다. “팀, 그게 가능해?” 팀은 단호했다. “제가 해볼게요.” 허락은 떨어졌다. 코드명은 없었다. 그냥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이라 불렀다.
팀은 키보드를 잡았다. HTML—정보를 구조화하는 언어. HTTP—정보를 주고받는 규칙. URL—정보의 주소를 정하는 체계. 그는 밤을 새우며 코드를 썼다. “이건 거미줄 같아야 해. 모든 게 얽히고 연결돼야 해.” 1990년, 첫 웹사이트가 완성됐다. NeXT 화면에 “http://info.cern.ch”가 떴다. “세계 최초의 웹페이지야,” 그는 웃었다.
하지만 혼자였다. 팀은 동료들에게 보여줬다. “이걸로 논문을 공유할 수 있어요!” 반응은 미지근했다. “너무 복잡해.” 팀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브라우저를 만들었다. “WorldWideWeb”이라는 이름의 소프트웨어. 클릭하면 정보가 펼쳐졌다. “이제 이해하겠지?”
1991년 8월, 팀은 인터넷 뉴스그룹에 글을 올렸다. “웹을 공개했어요. 무료로 써보세요.” 소문이 퍼졌다. 연구소 밖으로, 대학교로, 전 세계로. “이게 뭐야?” “너무 쉬워!” 개발자들이 코드를 뜯어보며 확장했다. 팀은 조건을 걸었다. “특허 없어요. 누구나 써도 돼요.” 그의 꿈은 돈이 아니라 연결이었다.
1993년, 웹은 날았다. 모자이크 브라우저가 나오며 대중이 손을 댔다. 팀은 CERN 밖으로 나와 W3C를 세웠다. “웹은 열려 있어야 해.” 하지만 위기도 왔다. 기업들이 돈 냄새를 맡았다. “특허를 내라!”라는 압박이 쏟아졌다. 팀은 버텼다. “이건 인류의 것이야.”
2019년, 제네바의 밤. 팀은 창밖을 보며 맥주를 들었다. WWW는 30년 만에 세상을 뒤덮었다. “내 거미줄이 이렇게 커질 줄이야,” 그는 미소 지었다. 페이스북, 구글, 모든 웹이 그의 씨앗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는 걱정도 했다. “너무 커져서 통제할 수 없게 됐어.”
알프스 바람이 불었다. 1989년의 그 사무실에서 시작된 거미줄은, 이제 전 세계를 감싸는 그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