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문학

  • 백년 동안의 고독

    백년 동안의 고독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책을 펼친 채 같은 페이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도서관의 고요함 속에서 활자들은 점차 흐릿해지고, 나는 집중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맞은편 테이블에 누군가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는 그저 시선을 피하기 위해 책에 더 집중하는 척했다. 하지만 호기심은 어쩔 수 없는 것. 슬쩍 시선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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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행

    부산행

    석우는 서울역 플랫폼에 서서 스마트폰의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5시 47분. 부산행 KTX가 3분 뒤에 출발한다는 안내 방송이 머리 위로 울려 퍼졌지만, 이어폰이 꽂혀 있는 그의 귀에는 희미한 배경음처럼 들릴 뿐이었다. 지난 사흘간의 출장은 끝없는 코드 수정과 클라이언트의 불만 섞인 전화로 점철되어 있었다. 눈꺼풀이 무겁고, 어깨는 마치 누군가 보이지 않는 짐을 얹어놓은 것처럼 뻐근했다. 그는 손에 든 종이컵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미 식어버린 커피는 입안에서 씁쓸하게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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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게 완벽한 여자 아이에 관하여

    내게 완벽한 여자 아이에 관하여

    내게 완벽한 여자 아이를 상상해본다. 그 아이는 키가 자그마하다. 사람들 사이에서 고개를 들어 찾아야 할 정도의 키. 얼굴은 동그레해서 어딘가 포근한 느낌을 준다. 너무 마르지도, 살찌지도 않은 보통의 체형. 그런 평범함이 오히려 좋다. 화려한 이목구비보다는 뚜렷하지 않은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특별히 눈에 띄지 않아도, 자꾸 보고 싶어지는 그런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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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의 바다에서

    겨울의 바다에서

    파도가 부서진다. 차갑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할퀴는데, 이상하게도 그 아픔이 오히려 위안이 된다. 회색빛 하늘과 더 짙은 회색의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은 오늘따라 더욱 흐릿하다. 세상의 끝은 이런 모습일까. 모래알은 차갑고, 젖은 발자국은 금세 지워진다. 인적 없는 이 바닷가에서 나만의, 아니 나와 바다, 그리고 바람만의 대화가 이어진다.

    저 멀리,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지점에서 무언가 작은 점이 보인다. 처음엔 갈매기인가 싶었다. 아니, 사람의 형체다. 여자다. 찬바람을 뚫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왜 이런 날씨에, 이런 곳에? 나처럼 무언가를 찾으러 왔을까, 아니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걸까.

    점점 가까워진다. 검은색 긴 코트가 바람에 나부낀다. 바다를 보는 건지, 모래를 보는 건지, 아니면 그저 앞만 보고 걷는 건지… 머리카락은 바람에 흩날리는데, 그녀는 손으로 정리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무심한 걸까, 아니면 그 흩날림마저 즐기는 걸까. 긴 머리카락이 검은 실처럼 허공에서 춤을 춘다. 바다처럼 푸른 스카프가 코트 위에서 파도처럼 일렁인다. 어쩌면 그녀는 바다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이제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오, 생각보다 젊다. 아니,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바다처럼 깊은 눈은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 나를 보지 않는다. 아니, 바다도, 하늘도, 그 무엇도 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저 자신의 내면 어딘가를 들여다보는 듯하다. 입술은 파르르 떨리는데, 추위 때문일까, 아니면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넘쳐서일까.

    그녀의 뺨은 바람에 붉게 물들었다. 손은 코트 주머니에 깊숙이 넣은 채, 발걸음은 일정하다. 리듬이 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음악에 맞춰 걷는 것 같다. 그 음악은 어떤 멜로디일까. 슬픈 발라드? 아니면 고요한 클래식? 어쩌면 바다의 소리와 같은, 끝없이 반복되는 파도의 리듬?

    그녀가 가까워질수록 주변의 공기가 변하는 것 같다. 내 호흡이 그녀의 호흡과 겹치는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을 스친다. 낯선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이 묘한 연결감은 무엇일까.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하는데, 어쩌면 가장 깊은 곳에서는 같은 이유로 이 겨울 바다를 찾은 건 아닐까.

    잠시, 아주 잠시 그녀의 시선이 나와 마주친다. 눈빛에는 깊은 이해가 담겨 있다.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나도 모르게 같은 동작으로 답한다. 어떤 언어보다 깊은 대화가 오간다. ‘당신도 알고 있군요, 이 겨울 바다의 비밀을.’ 약속이나 한 듯 우리의 시선은 다시 바다로 향한다.

    그녀가 지나간다. 코트 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내 옆을 스쳐간다. 희미한 향기가 잠시 머문다. 소금기와 뒤섞인 그 향은 무엇일까. 재스민? 아니면 바다 그 자체의 냄새? 그녀의 발자국이 모래 위에 이야기를 새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도가 와서 그 흔적을 지울 테지만.

    그녀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진다. 어깨는 펴져 있고, 걸음은 여전히 일정하다. 어디로 가는 걸까. 집? 누군가를 만나러? 아니면 또 다른 고독한 해변을 찾아서? 바람은 더 거세지고, 파도는 더 높아진다. 하지만 그녀는 흔들림 없이 걷는다. 강인함인가, 체념인가, 아니면 그저 무심함인가.

    이제 그녀는 다시 작은 점이 되었다. 처음 내가 그녀를 발견했을 때처럼. 점점 더 작아져 결국에는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지점에서 사라진다. 마치 시간의 흐름 속에 녹아든 것처럼. 그녀가 왔던 길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파도가 모든 것을 지웠다.

    이제 다시 나 혼자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그녀의 존재가, 그 짧은 교감이, 이 겨울 바다에 무언가를 남긴 것 같다. 바다는 여전히 차갑고, 바람은 여전히 매섭다. 하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변했다. 마치 오래된 얼음이 조금 녹은 것처럼.

    파도가 부서진다. 다시 한번. 그리고 또 한번. 끝없는 순환, 그 속에서 우리는 잠시 만났다가 헤어진다. 그녀는 누구였을까. 어쩌면 나의 또 다른 모습, 내가 되고 싶었던 혹은 두려워했던 나의 그림자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잠시 공유한 또 하나의 외로운 영혼일지도.

    해가 구름 사이로 잠시 얼굴을 내민다. 바다는 순간 빛나고, 그 빛 속에서 나는 그녀의 모습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겨울 바다에서 만난 그림자, 그 신비로운 만남이 내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지고, 나는 다시 바다를 바라본다. 그저, 바라본다.

  • 302호

    302호

    새벽 세시, 또 시작됐다.

    쿵. 쿵. 쿵.

    윗층에서 누군가 뛰는 소리. 규칙적이고 집요하게.

    수진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사 온 지 한 달, 매일 밤 같은 시간에 같은 소리가 들렸다.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넣었지만 402호는 비어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거짓말…”

    쿵. 쿵. 쿵.

    소리는 점점 커졌다. 마치 수진의 방 천장을 정확히 겨냥해 뛰는 것 같았다. 침대 위로, 책상 위로, 현관 쪽으로. 수진이 움직이는 곳을 따라.

    참다못해 수진은 빗자루로 천장을 쾅쾅 두드렸다.

    순간, 소리가 멈췄다.

    고요했다.

    너무 고요했다.

    그때, 천장에서 뭔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검붉은 액체가 전등 주변으로 번지더니 뚝뚝 떨어졌다. 수진의 이불 위로, 베개 위로, 얼굴 위로.

    똑. 똑. 똑.

    천장에 귀를 대고 듣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바닥에 엎드려 수진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속삭임이 들렸다. 천장 너머에서.

    “찾았다.”

    수진이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천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금이 가고, 벌어지고, 그 틈 사이로 무언가의 손가락들이 스멀스멀 기어 내려왔다.

    긴, 너무나 긴 손가락들이.


    다음 날 아침, 관리사무소 직원이 302호 문을 열었다. 실종 신고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천장엔 핏자국처럼 보이는 얼룩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202호 주민이 민원을 넣기 시작했다.

    “윗층에서 밤마다 뛰는 소리가 나요. 두 명이 뛰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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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가을 오후의 카페에서

    어느 가을 오후의 카페에서

    창가에 앉아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오후, 커피 향기가 은은히 퍼지는 이 공간에서 나는 잠시 세상과 분리된 듯한 고요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바깥의 햇살은 부드럽게 창문을 넘어와 테이블 위에 따스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 계절, 시간은 마치 꿀처럼 느릿하게 흐르는 듯했다.

    그때였다. 유리창 너머로 한 여인이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긴 생머리를 한쪽으로 늘어뜨리고 걸었다. 까만 머리카락이 햇살에 반짝이며 부드럽게 어깨를 타고 내려가는 모습이 마치 물결치는 검은 비단 같았다. 오후의 햇살이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들어 은은한 갈색 빛을 띠었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살짝 흩날릴 때마다 그림자와 빛이 교차하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그녀의 실루엣은 가을 햇살 아래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코트 자락이 걸음에 맞춰 살짝 흔들리며 리듬감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그녀가 입은 코트는 약간 헐렁해 보였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녀에게 어떤 자유로움을 부여하는 것 같았다. 가을바람이 불 때마다 코트 자락이 나풀거리며 그녀의 날렵한 걸음걸이에 생동감을 더했다.

    그녀의 걸음은 느리지도, 급하지도 않았다. 명확한 목적지가 있는 듯 일정한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가끔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길가에 핀 작은 꽃을 내려다보는 모습에서 잠시나마 세상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여유가 느껴졌다. 그 순간들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고, 나는 카페 창문 너머로 그 순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반쯤만 보였다. 옆모습이었기에 눈매의 깊이나 입술의 모양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햇살에 비친 그녀의 피부는 투명한 빛을 머금은 듯했다. 가끔 그녀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미소를 지을 때면, 그 표정이 마치 따스한 빛을 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미소는 어쩐지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만드는 전염성이 있었다.

    그녀의 한 손에는 작은 종이가방이 들려 있었다. 아마도 방금 어딘가에서 소중한 것을 구매했을까? 혹은 누군가를 위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 가방을 쥐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은 가늘고 섬세해 보였다. 가방을 들고 있는 손목이 살짝 올라갈 때마다 시계가 햇살에 반짝였다.

    다른 한 손은 자유롭게 흔들리며 그녀의 걸음에 자연스러운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가끔 그 손으로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돈하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섬세함이 느껴졌다. 그 작은 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다.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그녀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그녀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으로 채우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 짧은 순간 그녀의 존재는 내 오후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인생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 알 수 없는 타인들의 이야기가 우연히 내 시선에 들어와 잠시 감동을 주고 사라지는 것. 나의 이야기와 그녀의 이야기는 이 가을 오후, 이 카페의 창문을 사이에 두고 잠시 교차했다가 각자의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어느새 그녀는 카페 창문 너머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인상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내 앞에 놓인 식어가는 커피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나른한 오후는 계속되었고, 시간은 여전히 꿀처럼 천천히 흘러갔다. 창밖으로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지나갈 때까지.

  • 7의 여자

    7의 여자

    가을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오후, 거리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느릿하다. 그 속에서 그녀가 지나간다. 화려하지 않지만, 어딘가 눈길을 끄는 여자. 그녀는 10점 만점에 7점, 사람들 사이에서 ‘7의 여자’라 불리는 이다. 완벽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묘한 매력으로 세상을 사로잡는 그녀. 그녀는 누구보다도 사랑받는다. 왜일까? 그녀의 이야기는 단순한 외모의 숫자를 넘어, 인간의 마음을 흔드는 어떤 진실을 품고 있다.
    7의 여자는 눈부신 미인과는 다르다. 그녀는 거울 앞에서 완벽한 대칭을 찾으려 애쓰지 않는다. 그녀의 미소에는 살짝 비뚤어진 구석이 있고, 그녀의 눈빛은 때로 맑고 때로 그늘진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그녀를 특별하게 만든다. 그녀의 얼굴은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풍경 같다. 그것은 화려한 일출이 아니라, 잔잔한 호수 위로 퍼지는 물안개 같은 아름다움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보며 완벽함이 아닌, 친근함을 느낀다. 그녀는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그녀를 사랑하는 이들은 말한다. “그녀는 나를 긴장하게 만들지 않아.” 10점의 여자는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신화 속 여신 같지만, 7의 여자는 다르다. 그녀는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미소 짓고, 버스 정류장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한다. 그녀의 일상은 평범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묘한 생기가 있다. 그녀가 웃을 때,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진다. 그녀가 말할 때, 그 목소리는 마음 깊숙이 스며든다. 그녀는 완벽하지 않기에,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나도 그녀를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7의 여자는 자신을 안다. 그녀는 자신이 10점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5점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감추려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을 무기로 삼는다. 그녀의 자신감은 과시가 아니라, 조용한 확신이다. 그녀는 세상이 정한 완벽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녀의 옷차림은 최신 유행을 따르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녀만의 색깔이 있다. 그녀의 말투는 세련되지 않을 수 있지만, 진심이 담겨 있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고, 그 사랑은 다른 이들에게도 전염된다.
    그녀의 매력은 외모만이 아니다. 7의 여자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빛난다. 그녀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진심으로 웃고,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줄 때 마음을 다한다. 그녀는 모든 이에게 다정하지 않지만, 그녀가 베푸는 다정함은 깊다. 그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데 탁월하다. 누군가 그녀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그녀의 조언은 거창하지 않지만,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너는 충분히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그녀 자신에게도 향한다.
    가끔 그녀는 외로움을 느낀다. 세상은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 역시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다. 그녀는 사랑받는 만큼 사랑하고 싶어 한다. 그녀는 누군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 마음과 함께 걷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녀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이 찾아올 때까지 자신을 잃지 않는다. 그녀는 혼자일 때도 충만하다. 그녀는 바람 부는 저녁, 창가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세상을 바라본다. 그 순간,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7점의 여자다.
    7의 여자는 세상의 기준을 넘어선다. 그녀는 10점의 완벽함을 꿈꾸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7점의 가치를 안다. 그 가치는 숫자로 매길 수 없는, 그녀만의 이야기와 감정, 그리고 삶의 흔적들로 만들어진다. 그녀는 누군가에게는 첫사랑의 기억이고,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친구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삶의 용기를 주는 존재다. 그녀는 세상 어디에나 있다. 당신이 지나친 거리의 한 사람일 수도, 당신이 사랑하는 이일 수도 있다.
    가을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스치며 지나간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은 세상의 모든 7점을 담고 있다. 그녀는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그녀는 7의 여자,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존재다.

  • 돌 속의 심장

    돌 속의 심장

    1983년, 영국 케임브리지의 가을은 서늘했다. 소피 윌슨은 어콤 컴퓨터(Acorn Computers)의 작업실에서 낡은 설계도를 펼쳤다. 창밖으론 낙엽이 떨어졌고, 그녀의 손엔 연필이 들려 있었다. “우린 더 작고 강한 걸 만들어야 해,” 그녀는 중얼거렸다. BBC 마이크로로 성공을 맛봤지만, 소피는 한계를 봤다. 인텔의 복잡한 칩은 전력을 잡아먹었다.

    스티브 퍼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소피, 새 프로젝트 시작했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RISC로 가자. 단순하고 효율적이야.” 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명령어를 줄여 속도를 내는 아이디어였다. 그들은 팀을 꾸렸다. 12명의 엔지니어, 작은 꿈. “이건 돌 속에 숨은 심장이 될 거야,” 소피는 말했다.

    작업실은 곧 전쟁터가 됐다. 소피는 ARM1 설계를 그렸다. 32비트, 최소한의 전력. “배터리로도 돌아가야 해,” 그녀는 강조했다. 1985년 4월, 첫 칩이 나왔다. 스티브가 테스트 보드를 켰다. “작동해!” 숫자가 화면에 떴다. 하지만 어콤은 흔들리고 있었다. 시장은 IBM PC에 쏠렸다. “이걸 어디에 쓰지?” 경영진은 회의적이었다.

    1987년, 위기가 왔다. 어콤은 자금을 잃었고, ARM은 표류했다. 소피는 좌절했다. “내 심장이 이렇게 끝나?” 하지만 올리베티가 손을 내밀었다. “우리가 투자할게요.” 1990년, ARM은 독립했다. Advanced RISC Machines. 애플이 눈독을 들였다. 뉴턴 PDA에 ARM을 심으려 했다. 소피는 미소 지었다. “이제 날아오를 때야.”

    1998년, ARM은 폭발했다. ARM7이 휴대폰에 들어갔다. 노키아, 모토로라—작고 강한 칩은 배터리를 아꼈다. “이건 모바일의 심장이야,” 스티브가 말했다. 썬, 인텔이 복잡한 칩으로 싸울 때, ARM은 단순함으로 이겼다. 회사는 라이선스 모델을 택했다. “우린 칩을 안 팔아. 설계를 팔지,” 경영진은 선언했다.

    2010년대, ARM은 세상을 장악했다. 아이폰, 안드로이드—스마트폰의 90%가 ARM 심장을 뛰게 했다. 소피는 케임브리지의 강가를 걸으며 생각했다. “내가 만든 게 이렇게 커질 줄이야.” 2016년, 소프트뱅크가 320억 달러에 ARM을 샀다. “태양이 우리를 삼켰어,” 스티브가 농담했다.

    2023년, 케임브리지의 가을. 소피는 강가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ARM Cortex는 자동차, 서버까지 뻗었다. “돌 속의 심장이 세상을 움직여,” 그녀는 미소 지었다. 1983년의 그 작은 씨앗은, 이제 전 세계의 맥박이 되어 뛰고 있었다.

  • 뱀의 속삭임

    뱀의 속삭임

    1989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겨울은 축축했다. 귀도 반 로섬은 CWI 연구소의 작은 사무실에서 낡은 워크스테이션을 켰다. 창밖엔 운하를 따라 안개가 흘렀고, 그의 손엔 커피잔이 들려 있었다. “프로그래밍은 더 쉬워야 해,” 그는 중얼거렸다. ABC라는 언어를 다뤘던 그는, 그 잠재력을 사랑했지만 한계에 부딪혔다. “너무 딱딱해. 더 유연한 게 필요해.”

    12월, 크리스마스 휴가였다. 연구소는 조용했고, 귀도는 심심했다. “뭐라도 만들어볼까?” 그는 키보드를 잡았다. 새로운 언어를 구상했다. 단순하고, 읽기 쉽고, 재미있는 것. 이름은 고민 끝에 떠올랐다. 파이썬(Python)—그가 좋아하던 코미디 쇼 ‘몬티 파이튼’에서 따왔다. “코드는 진지할 필요 없어. 웃음이 있어도 돼,” 그는 웃었다.

    귀도는 코드를 썼다. 들여쓰기로 구조를 잡고, 복잡한 문법을 던졌다. “C는 너무 번거로워. 난 사람이 읽기 좋은 걸 원해.” 며칠 만에 첫 버전이 나왔다. 그는 동료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새 언어를 만들었어요. 한번 봐주세요.” 반응은 미지근했다. “ABC랑 뭐가 달라?” 하지만 귀도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건 내 취미야. 내가 쓰고 싶어서 만든 거야.”

    1991년 2월, 파이썬 0.9.0이 공개됐다. 뉴스그룹에 올리자, 소문이 퍼졌다. “이거 간단하네!” “코드를 읽는 게 즐거워!” 개발자들이 모여들었다. 귀도는 놀랐다. “내가 만든 뱀이 이렇게 커질 줄이야.” 그는 오픈소스로 풀었다. “누구나 고쳐도 돼. 같이 키우자.”

    시간이 흘렀다. 1994년, 파이썬 1.0이 나왔다. 람다, 모듈—기능이 쌓였다. 암스테르담의 운하 옆 카페에서 귀도는 맥주를 마시며 미소 지었다. “이건 단순한 도구가 아니야. 사람을 해방시키는 거야.” 하지만 갈등도 있었다. “너무 느려!”라는 비판이 나왔다. 귀도는 어깨를 으쓱했다. “속도보다 명확함이 중요해.”

    2000년, 파이썬 2.0이 나왔다. 리스트 컴프리헨션, 가비지 컬렉션—뱀은 더 강해졌다. 구글이, 유튜브가 파이썬을 품었다. 귀도는 미국으로 옮겼다. 2005년, 구글에 합류하며 그는 말했다. “내 뱀이 세상을 돕고 있어.” 2008년, 파이썬 3.0은 과거를 끊었다. “미래로 가야 해,” 그는 단호했다.

    2018년, 귀도는 리더 자리를 내려놓았다. “난 왕이 아니야. 이건 이제 모두의 거야.” 2023년, 암스테르담을 다시 찾은 그는 운하를 걸었다. 파이썬 3.11이 세상에서 뛰고 있었다. “내가 심은 씨앗이 이렇게 자랄 줄이야,” 그는 미소 지었다. 창밖 안개 속, 뱀의 속삭임은 전 세계로 퍼져 있었다.

  • 태양의 등불

    태양의 등불

    1982년, 캘리포니아 스탠퍼드의 봄은 화창했다. 빈 커프먼은 캠퍼스 근처의 허름한 창고에서 낡은 워크스테이션을 켰다. 그의 옆엔 앤디 벡톨샤임, 스콧 맥닐리, 빌 조이가 서 있었다. “우린 세상을 바꿀 거야,” 빈이 말했다. IBM의 거대한 메인프레임이 지배하던 시대, 그들은 작은 꿈을 꾸고 있었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강력한 컴퓨터.

    앤디는 책상에 스케치를 펼쳤다. “워크스테이션 하나로 연구소 전체를 돌릴 수 있어.” 그는 스탠퍼드에서 만든 SUN(Stanford University Network) 설계를 들고 왔다. “이걸로 시작합시다.” 이름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태양처럼 밝고 뜨거운 회사. 그들은 창고에서 첫 기계를 조립했다. Sun-1, 네트워크의 씨앗이었다.

    사업은 폭발했다. 1984년, Sun-2가 나왔다. 빌 조이는 유닉스를 다듬어 Solaris를 심었다. “소프트웨어가 핵심이야,” 그는 말했다. 대학, 연구소, 기업들이 썬의 기계를 샀다. 스콧은 숫자를 보며 웃었다. “우린 IBM을 흔들고 있어!” 1986년, 썬은 나스닥에 상장했다. 창고는 멘로파크의 새 사무실로 바뀌었다.

    1990년대, 썬은 날았다. SPARC 프로세서로 속도를 냈고, NFS로 네트워크를 장악했다. 어느 날, 제임스 고슬링이 찾아왔다. “스마트 기기를 위한 언어를 만들었어요.” 자바(Java)였다. 스콧은 반信반의했다. “이게 돈이 될까?” 하지만 1995년, 자바가 웹을 뒤흔들었다. “이건 태양의 불꽃이야,” 빈이 말했다.

    하지만 그림자도 드리웠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로 시장을 잡았다. “썬은 너무 비싸,”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스콧은 이를 악물었다. “우린 싸구려 안 만들어. 품질로 승부해.” 2000년대, 닷컴 붕괴가 썬을 강타했다.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태양이 지고 있어,” 직원들이 속삭였다.

    2008년,危機가 왔다. 금융위기로 매출이 떨어졌다. 스콧은 회의실에서 말했다. “우린 살아남을 거야.” 하지만 2009년, 오라클이 손을 내밀었다. “썬을 살려주죠.” 2010년, 74억 달러에 인수가 끝났다. 빈은 사무실을 떠나며 중얼거렸다. “내 태양이 꺼졌어.”

    2023년, 멘로파크의 카페. 앤디는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자바는 여전히 뛰고, Solaris는 서버에서 숨 쉬었다. “우리가 만든 등불은 꺼지지 않았어,” 그는 미소 지었다. 1982년의 그 창고에서 켜진 불빛은, 태양이 지고도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