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기 전, 도시는 금빛으로 물들었다. 운전대를 꽉 쥐고 있던 나는 빨간색 신호에 맞춰 횡단보도 앞에 부드럽게 차를 세웠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길을 건너려고 기다리는 한 소녀였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황금빛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얼추 열여섯 정도로 보이는 그 소녀는 교복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하얀색 이어폰을 꽂은 채 리듬에 맞춰 살짝 몸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문득 나의 저 나잇대 시절이 떠올랐다. 나도 저렇게 음악에 빠져 세상을 잊곤 했었지. 그때는 미래가 무한히 넓게 펼쳐져 있는 것만 같았다. 모든 가능성이 내 앞에 놓여 있었고, 나는 그저 선택만 하면 됐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고, 소녀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녀의 걸음걸이에는 어떤 가벼움이 있었다. 아직 세상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지 못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가벼움.
나는 그녀가 길을 다 건널 때까지 눈으로 쫒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치 시간이 느려진 것 같았다. 황금빛 햇살 아래, 그녀의 실루엣이 점점 멀어져 갔다.
액셀러레이터를 밟기 전, 문득 내가 매일 지나치는 이 길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지나치는 우리는 서로 모르는 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 순간, 그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서로의 삶에 들어와 있다.
차를 다시 출발시키며, 내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맴돌았다. 저 소녀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그녀의 꿈은 무엇일까? 그녀의 이어폰에서는 어떤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을까?
도시의 황금빛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하늘은 점점 더 짙은 파란색으로 물들었고,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나는 창문을 조금 내리고 저녁 공기를 들이마셨다. 살짝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갑자기 내 앞에 펼쳐진 도로가 무한히 길게 느껴졌다.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모두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삶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달리다가, 때로는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 그리고 우연히 마주친 순간들에서 의미를 찾는 것.
오늘의 골든 아워는 이제 곧 끝나겠지만, 내일 또 다른 골든 아워가 찾아올 것이다. 그때는 또 어떤 순간이 내 기억에 남을까? 어떤 얼굴이, 어떤 장면이 내 마음을 움직일까?
차를 몰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미소 지었다. 때로는 가장 평범한 순간이 가장 특별한 기억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 횡단보도를 건너던 소녀의 모습은 내 마음 한구석에 작은 빛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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