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 앉아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오후, 커피 향기가 은은히 퍼지는 이 공간에서 나는 잠시 세상과 분리된 듯한 고요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바깥의 햇살은 부드럽게 창문을 넘어와 테이블 위에 따스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 계절, 시간은 마치 꿀처럼 느릿하게 흐르는 듯했다.
그때였다. 유리창 너머로 한 여인이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긴 생머리를 한쪽으로 늘어뜨리고 걸었다. 까만 머리카락이 햇살에 반짝이며 부드럽게 어깨를 타고 내려가는 모습이 마치 물결치는 검은 비단 같았다. 오후의 햇살이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들어 은은한 갈색 빛을 띠었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살짝 흩날릴 때마다 그림자와 빛이 교차하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그녀의 실루엣은 가을 햇살 아래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코트 자락이 걸음에 맞춰 살짝 흔들리며 리듬감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그녀가 입은 코트는 약간 헐렁해 보였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녀에게 어떤 자유로움을 부여하는 것 같았다. 가을바람이 불 때마다 코트 자락이 나풀거리며 그녀의 날렵한 걸음걸이에 생동감을 더했다.
그녀의 걸음은 느리지도, 급하지도 않았다. 명확한 목적지가 있는 듯 일정한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가끔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길가에 핀 작은 꽃을 내려다보는 모습에서 잠시나마 세상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여유가 느껴졌다. 그 순간들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고, 나는 카페 창문 너머로 그 순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반쯤만 보였다. 옆모습이었기에 눈매의 깊이나 입술의 모양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햇살에 비친 그녀의 피부는 투명한 빛을 머금은 듯했다. 가끔 그녀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미소를 지을 때면, 그 표정이 마치 따스한 빛을 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미소는 어쩐지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만드는 전염성이 있었다.
그녀의 한 손에는 작은 종이가방이 들려 있었다. 아마도 방금 어딘가에서 소중한 것을 구매했을까? 혹은 누군가를 위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 가방을 쥐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은 가늘고 섬세해 보였다. 가방을 들고 있는 손목이 살짝 올라갈 때마다 시계가 햇살에 반짝였다.
다른 한 손은 자유롭게 흔들리며 그녀의 걸음에 자연스러운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가끔 그 손으로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돈하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섬세함이 느껴졌다. 그 작은 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다.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그녀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그녀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으로 채우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 짧은 순간 그녀의 존재는 내 오후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인생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 알 수 없는 타인들의 이야기가 우연히 내 시선에 들어와 잠시 감동을 주고 사라지는 것. 나의 이야기와 그녀의 이야기는 이 가을 오후, 이 카페의 창문을 사이에 두고 잠시 교차했다가 각자의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어느새 그녀는 카페 창문 너머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인상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내 앞에 놓인 식어가는 커피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나른한 오후는 계속되었고, 시간은 여전히 꿀처럼 천천히 흘러갔다. 창밖으로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지나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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