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스위스 제네바 근처의 CERN 연구소. 팀 버너스-리는 복도 끝 사무실에서 낡은 NeXT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론 알프스 산맥이 어렴풋이 보였고, 그의 책상엔 종이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서른넷의 팀은 물리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정보의 흐름에 푹 빠져 있었다. “이 데이터들은 서로 연결돼야 해,” 그는 중얼거렸다.
CERN은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모인 곳이었지만, 혼란이었다. 실험 데이터, 논문, 메모—모두 제각각 흩어져 있었다. 팀은 꿈꿨다. 모든 정보를 하나로 묶는 시스템을. 그는 몇 년 전부터 ‘ENQUIRE’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더 큰 걸 해야 해. 전 세계를 잇는 거야.”
어느 날, 그는 상사 로버트 카이야우에게 제안을 던졌다. “정보를 하이퍼텍스트로 연결하면 어떨까요?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요.” 로버트는 눈썹을 치켰다. “팀, 그게 가능해?” 팀은 단호했다. “제가 해볼게요.” 허락은 떨어졌다. 코드명은 없었다. 그냥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이라 불렀다.
팀은 키보드를 잡았다. HTML—정보를 구조화하는 언어. HTTP—정보를 주고받는 규칙. URL—정보의 주소를 정하는 체계. 그는 밤을 새우며 코드를 썼다. “이건 거미줄 같아야 해. 모든 게 얽히고 연결돼야 해.” 1990년, 첫 웹사이트가 완성됐다. NeXT 화면에 “http://info.cern.ch”가 떴다. “세계 최초의 웹페이지야,” 그는 웃었다.
하지만 혼자였다. 팀은 동료들에게 보여줬다. “이걸로 논문을 공유할 수 있어요!” 반응은 미지근했다. “너무 복잡해.” 팀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브라우저를 만들었다. “WorldWideWeb”이라는 이름의 소프트웨어. 클릭하면 정보가 펼쳐졌다. “이제 이해하겠지?”
1991년 8월, 팀은 인터넷 뉴스그룹에 글을 올렸다. “웹을 공개했어요. 무료로 써보세요.” 소문이 퍼졌다. 연구소 밖으로, 대학교로, 전 세계로. “이게 뭐야?” “너무 쉬워!” 개발자들이 코드를 뜯어보며 확장했다. 팀은 조건을 걸었다. “특허 없어요. 누구나 써도 돼요.” 그의 꿈은 돈이 아니라 연결이었다.
1993년, 웹은 날았다. 모자이크 브라우저가 나오며 대중이 손을 댔다. 팀은 CERN 밖으로 나와 W3C를 세웠다. “웹은 열려 있어야 해.” 하지만 위기도 왔다. 기업들이 돈 냄새를 맡았다. “특허를 내라!”라는 압박이 쏟아졌다. 팀은 버텼다. “이건 인류의 것이야.”
2019년, 제네바의 밤. 팀은 창밖을 보며 맥주를 들었다. WWW는 30년 만에 세상을 뒤덮었다. “내 거미줄이 이렇게 커질 줄이야,” 그는 미소 지었다. 페이스북, 구글, 모든 웹이 그의 씨앗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는 걱정도 했다. “너무 커져서 통제할 수 없게 됐어.”
알프스 바람이 불었다. 1989년의 그 사무실에서 시작된 거미줄은, 이제 전 세계를 감싸는 그물이 되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