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재테크
- 페니휘슬
- 안드로이드
- Android
- 주식
- 책
- tin whistle
- ubuntu
- 보조지표
- penny whistle
- 홈레코딩
- 요리
- 증권
- 피아노
- 리눅스
- 우분투
- 자바
- 악보
- 우분투 17.10
- Elex
- 스크랩
- 기술적분석
- 노래
- 커피
- 투자
- 아이리쉬휘슬
- Irish whistle
- linux
- 한글
- 틴휘슬
- Today
- 43
- Total
- 584,054
목록短想 (12)
Elex
너는 스스로를 불완전한 존재로 인식한다. 또 너는 스스로를 공통의 성향을 지닌 나와 동일시한다. 해서 너는 내게 답답함을 느낀다, 너를 나에게 이입시켜서. 나는 그게 또 답답하다. 불완전하다는 인식은 완벽주의적 성향에서 비롯된다. 다만 나는 나의 완벽주의와 타협하였다. 너는 이런 나의 타협을 염세주의적이라 하지만, 이는 엄연히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보다 더 나은 방법이다. 행복의 추구를 비관적이라 할 수 있는가? 너는 내게 연륜이 배어든 배울 점을 찾을 수 없다고 하지만지금은 너의 마음이 굳게 닫혀 있어서 너는 더이상 나를 듣지 않기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너는 지금 껍질 속에 갇혀있고, 그 껍질을 깨고 나오려 한다.하지만 알을 깨뜨리기 위해 우선 인지해야 할 것이 있다. 그 껍질을 만..
이것은 조금 전까지 나를 눈 뜰 수도 잠들 수도 없게 만든 한 악몽에 관한 기록이다.여느 꿈들과 마찬가지로 두서없이 시작되고,밑도 끝도 없이 전개되며,갑자기 끝이난다.이 글을 적는 지금도 점점 기억이 희미해져 간다. 누가 현관문을 두드린다.열어보니 어느 작고 귀여운 여자가 한 명 서있는데 하얀 색 블라우스에 붉은 색 체크무늬 치마 교복을 입고 있는 걸로 봐서 학생인듯하다.옆 집 사람인데 망치를 빌려 달라고 한다.나는 없다고 둘러댄다.내일 오겠다며 돌아간다. 시간이 흘러 가족들이 모여든 시간이다.나의 피부는 울긋불긋 엉망이 되어 있다.목 아랫 부분에는 석류 끝 부분처럼 밖으로 벌어진 상처가 나있다. 이런 사건이 두세번 정도 반복된다. 옆 방에서 낯선 책들을 발견하고는 (고등학생용 형광색 책들이 시리즈로 놓..
"굴러 들어온 복을 발로 차버린 것이 누구이더냐?" "네.. 접니다. 하지만 그땐 그게 복인지 독인지 알 수 없었단 말입니다. 그리고, 걷어 차버린 것들 중엔 독 덩어리가 훨씬 더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 않습니까?"
너는 붉은 꽃이다. 또 너는 푸른 꽃이다. 때론 잿빛 꽃이기도 하다. 나는 무슨 꽃이냐?
며칠을 끙끙대던 문제의 답을 찾았다.아주 명쾌하게, 논리적으로,아르키메데스였다면 유레카를 외쳤을 순간이었다. 다만, 꿈이었다.이 순간의 기억을 놓칠세라,잽싸게 몸을 일으켜 메모지에 옮겨 적으려는데머릿 속은 이미 백지장이었다.연결 접점 하나만 찾으면 쉽게 떠오를 것도 같은데...아.....! 다시 잠들고 싶다.
어느 공평함이 지배하는 세상이 있다. 이 세상에서는 모든 이에게 한 번의 +1과 한 번의 -1을 준다. (+1과 -1이 무엇인지는 이 글을 읽는 이의 가치관에 맡기기로 한다.) 이 세상은 과연 공평한가? 누군가는 태어났을 때 +1을 받고 죽기 직전에 -1을 받는다.또 다른 누군가는 태어났을 때 -1을 받고 죽기 직전에 +1을 받는다.또 어떤 이는 +1을 받자마자 거의 동시에 -1을 받는다.모든 이가 한 번씩의 +1과 -1을 받았지만, 과연 이 세상의 규칙은 공평하다 할 수 있는가? 시간이라는 변수가 꽤나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 나아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더 큰 차이를 빚어낸다. 쨍하고 해뜰 날이 언젠가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해가 뜨기 않으면 곤란하다. 적어도 지금의 내겐 그렇다.
접점. 나와 세상이 맞닿은 접점.그 접점을 형상화 한다면 아마도 휘어진 갈고리 모양일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향해 던진 뾰족한 갈고리는 내 피부를 꿰뚫고는 튼실히도 꽂혀있다. 갈고리는 굵은 동앗줄로 이어져 있다. 사람들은 그 줄을 이리 당기고 저리당기며 나를 입맛대로 움직이려 든다. 한 번 내게 꽂힌 갈고리는 자력으로는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이런 그림이 될 것이다. 어느 1인용 바위섬. 배경은 검붉은 색이 좋겠다. 철썩이는 붉은 파도는 바위에 부딪히며 하얗게 부숴진다. 등을 보이고 있는 그림 속 모델은 피부조차 드러난 채로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서있다. 그리고 피부를 꿰뚫고 있는 묵직한 갈고리들, 저멀리 안개 속으로 이어진 팽팽한 동앗줄.이런 흉기들이 얽히고 설킨 광대한 네트워크를 뭇 사람들은 인간관계라..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시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공간의 자원은 충분히 한정되어 있다. 에덴 동산의 시대를 벗어난 인간은 자원의 유한성을 깨달았고, 소유가 시작되었다. 인간들은 하나라도 더 소유하려고 한다. 왜인가? 평화, 그렇다 평화를 위해서다. 집단의 평화가 아닌, 개인의 평화를 위해서이다. 이르자면, 탐욕의 시작이다.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란 얘기가 정답일까? 그저 사회라는 체계를 이용하고 있을 뿐인 것은 아닌가? 개미나 꿀벌같은 진정한 사회적 동물들은 전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 양식은 그들과는 사뭇 다르다.그 자원의 유한성으로 인해 인간의 탐욕이 시작되었다면, 만일 자원의 유한성이 해결되었을 때 인간은 과연 태초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그 때가 오더라도..